[홍창진 칼럼] 적당주의

홍창진

발행일 2016-06-07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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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질서에서 '적당히' 하기엔
너무 힘들어 새로움을 찾는 것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
적당주의 인생의 성적표는
중간인 50점이 아니라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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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엑달'이라고 불리는 청년이 있습니다. 엑셀이라는 회계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 때문에 생긴 별명입니다.

좋은 재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엑달' 때문에 그 청년은 이직을 하고 말았습니다. 왜냐 하면 다른 부서 상사들까지 일을 맡겨서 밤 11시 넘어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이직한 것입니다. 다른 직장에 가서는 '엑달' 임을 감추고 적당히 지낸다고 합니다.

'아이디어 뱅크'라고 불리는 청년이 있습니다. 제안 회의 때마다 고민 고민해서 아이디어를 내면 "김 대리 그 건은 자네가 맡아 추진해 봐"라고 떨어진다고 합니다. 처음엔 모르고 5건 연타로 제안했다가 연타로 책임을 떠맡게 되어 휴가도 반납하고 일만 해야 했습니다. 그 후로 이 청년은 제안할 때 핵심 아이디어를 빼고 진부한 아이디어 4개, 기가 막힌 건 1개의 비율로 적당히 제안한다고 합니다.

의욕과 열정으로 자기실현을 하려는 청년들이 왜! 적당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일까요? 왜! 이 사회는 "싫어요" 내지는 "아니오"라고 말 못하고 스스로 기가 죽어서 전체 안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일까요! 모두가 각자 개성을 살려 열정을 뿜어 대면 본인도 보람이 있고 이 사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텐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직자 사회 안에서 적당주의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중들의 아픈 마음을 보다 더 잘 보살펴 주기 위해서 종교 조직을 벗어나 길거리 시위도 하고 강연도 다니면 구설수에 오릅니다. "거룩한 종교가 세속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공명심 때문에 그러는 거다" 등등 말이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 듣기 싫으면 그냥 적당히 주어진 일만 하자는 주의도 많이 있습니다.

종교 조직도 회사 조직도 기성 질서에서 적당주의를 탈피하기는 너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기성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질서에 희망을 두고 저 또한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피 속에 흐르는 열정을 이 질서에다 쏟아붓지 않고는 화병이 나서 못 견디겠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새 질서가 기존 질서에 상당히 영향을 준다는 면이 힘이 되고 보람이 됩니다.

새 질서는 서로 "아니오" 라고 자유롭게 말하기로 약속하고 시작합니다. 각자 역할만 있을 뿐 상사도 부하도 없이 서로 동등합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사건을 중심으로 이것을 개선하려는 모임이 결성되기도 하고, 환경 문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모임을 결성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들의 이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하면서 기존 질서 안에도 속해 있지만 동시에 새 질서에도 소속되어 기존 질서의 활동 보다 더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이 많습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질서에서 까불다가 잘려서 밥줄 끊기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자유와 정의를 돈줄에 담보 잡히기에는 우리 피가 뜨겁고 진합니다.

인생은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맛에 사는 것입니다. 적당히 산다고 인생 성적표가 중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를 저당 잡히고 무슨 보람과 기쁨이 있습니까! 적당주의 인생의 성적표는 중간인 50점이 아니라 0 점입니다.

/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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