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오판(誤判)의 시대

이진호

발행일 2016-06-0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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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아이디어로 힘 보태는 체계 공직사회도 필요
국내에서 외면당한 기업들 첨단기술 해외서 빛 발해
관련법·규제 등 트집잡아 밀어내려는 풍토 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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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금과 같은 첨단 시대에 비행기와 자동차 무용론은 우스운 얘길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다.

1911년 프랑스 군 전략가인 마셀 페르디난드는 "비행기는 흥미롭지만, 군사적 가치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말(馬)은 현재도 변함없이 사용되는 것이지만 자동차는 단지 신제품으로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다." 1903년 미시간 은행장이 헨리 포드의 변호사에게 포드자동차 회사에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한 말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자동차가 일시적 유행에 지나쳤을까.

"배우들이 말하는 것을 도대체 누가 듣고 싶어 하겠는가" 세계 최대 영화사 중 하나인 워너브라더스의 해리 워너는 1927년 유성영화 기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그는 무성영화만으로도 영화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것 같다. 1962년 세계 최고의 팝 아티스트로 불리는 비틀즈에 대해 데가 레코드사는 "우리는 그들의 소리를 싫어한다. 기타를 치는 그룹들은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발표문을 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개인이 자신의 집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1977년 디지털 이큅먼트사의 창립자이자 사장인 케네스 올슨의 말).", "회사가 전기 장난감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전화회사를 10만 달러에 팔겠다는 그레이엄 벨의 제안을 거절한 웨스턴 유니온 사장인 윌리엄 오턴의 말)?" 라는 사례만 보더라도 새롭게 개발된 기술이 당대에 얼마나 배척당했는지 엿볼 수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와 지식은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앞서 사례처럼 첨단 기술의 가치를 오판(誤判)한 이들은 군사전략가, 투자 상담 은행장, 유명 레코드회사, 영화제작사, 디지털 전문가, 대기업 대표 등 소위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다. 기술과 능력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의 오판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와 자동차, 전화, 비틀즈, 유성영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행스럽게도 그 가치를 알아본 또 다른 전문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단치 않게 여겨졌던 것들에 대한 가치를 높이고, 기술을 개발시키고, 능력을 키우는 노력이 없었더라면 한때 유행이나 재미있는 기술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체계를 구축시키는 것은 어느 조직에서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는 상업적인 일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라 공직사회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대체로 보면 공무원들은 '없던 일 만들기'를 싫어한다. 굳이 일을 만들지 않아도 월급 받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늘 하는 말이 "법 근거가 없어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라는 이유로 등을 돌린다. 그나마 "다른 데서 인정받은 비슷한 사례가 있나요? 혹시 법적 근거를 알고 계신가요?"라고 묻는 공무원들은 일을 도와주려는 축에 든다.

첨단 기술로 제작된 군용 침낭을 두고 30여 년 전에 개발된 침낭을 납품받은 군 관계자들이 최근 적발됐다. 신기술은 외면한 채 로비에 휘둘려 뒷돈을 챙긴 것이다. 국내에서 외면한 전기차 기술을 중국에서 꽃피운 레오모터스는 정부지원 한 푼 없이 민간자본 150억 원을 투입해 기술을 개발시켰고, 중국에 대단위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한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 외면당하던 우리 기업들의 첨단 기술이 오히려 해외에서 빛을 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관련 법이 없어서, 규제 때문에, 기득권의 이익을 챙겨주려고 갖은 트집을 잡아 밀어내려는 공직사회의 풍토 때문이다. 아마도 '창의적인 업무'에 대한 수행 평가를 한다면 '공무원 조직'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에게 창의적인 일을 만들어보라는 말도 못하겠다. 민간에서 제안하는 좋은 제안과 기술을 외면해 다른 나라에 뺏기는 섣부른 판단만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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