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칼럼] '자서전'小考

강은교

발행일 2016-06-14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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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돈 많은 사람들은
'남이 쓴 자서전'을 출간해
화려하게 출판기념회를 연다
20년전이나 지금도 투명하게 쓸
배짱있는 사람들은 없고
여전히 무서워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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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
한 친구가 부탁이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인생을 적은 글을 손주들에게 남기고 싶어서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보고 읽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서전하니까, 언젠가의 대화가 떠오른다. '동서양의 자서전 비교연구'라는 논문을 쓰게 되어 자서전을 읽고 있는데, 한국 작가의 것은 찾기가 힘들다며, 나에게 묻던 한 선생님의 말이었다. 그때, "왜 그럴까요? 서양은 그렇지 않은데…"하고 묻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글쎄요, 조선조의 유교문화 때문일까요?", "그보다 투명하게 자기를 내보이는 것이 습관이 안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네 그래요, 작금의 일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은 아직 멀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군요", "그러고 보니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시도 별로 없군요. 오히려 1930년대의 시인들인 윤동주, 서정주의 시에 좋은 자화상의 시가 있네요."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무서워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서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서정주의 유명한 시집 화사집도 자화상으로 시작되죠.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 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자화상, 서정주>

'특히 서정주의 자화상은 자기 자리의 인식에 아주 투철한 그런 자기 성찰의 시죠.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시라는 공통점이 있네요.오히려 지금 그런 이상, 자기 성찰, 윤동주의 순결성, 투명성같은 덕목들은 없어진 모양예요." 하긴 자기를 그린다는 것, 서민은 그렇지도 않겠지만, '남들을 밟고' 사회의 윗부분으로 올라간 이들의 투명한 자서전을 보기란 이 시대에 지난한 일이리라. "그래요, 요즘 뉴스를 볼라치면 정의도 도덕성도 투명성도 다 사라졌다는 자괴감마저 들어요. 전화 한 통에 몇 억이 왔다갔다 하고, 엉터리 인증서를 국가가 주어서 위험한 화학제품들을 팔고, 내가 입을 열면 여러사람이 다칠걸, 하는 말이 연극 대사가 아닌 사회,, 그러다 보니 금전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자서전'이 없는, 또는 자서전이 무서운 사회, 하긴 이말은 좀 바꿔야 겠다. 어떤 돈많은 사람들은 '남이 쓴 자서전'을 출간하고, 화환이 주욱 늘어선 화려한 출판 기념회를 열고 있으니까. 아,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20년 전과 거의 비슷한 대화를 자서전을 쓰려한다는 친구와 지금 또 펼치는 걸 보니…. 20년 전에도 투명한 자서전을 쓸 뱃장있는 사람들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이야기일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서전을 무서워 하고 있는 것인가?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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