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군사기록유산의 백미, 군영등록(軍營謄錄)

이배용

발행일 2016-06-20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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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군사제도뿐 아니라
정치·외교·경제·사회분야 등
다양한 생활사 담아낸 자료
가치있는 300년 기록속에서
평화의 의미 찾아볼 수 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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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기록문화의 나라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등 13개가 등재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속된 조선왕조 왕실도서관인 장서각에는 왕실문헌 12만 권과 문중에서 기증 기탁한 고문헌이 5만 권으로 총 17만 권의 찬란한 기록문헌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에 조선왕실의궤, 동의보감은 이미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이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세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군영등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키는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선왕조가 문무양반제도를 갖추었음에도 무를 경시하고 문치에 치중했다고 하지만 무에 대한 중요성을 소홀히 여긴 것은 아니다. 장서각이 소장한 조선왕조의 군영등록은 조선후기 도성(都城)에 주둔하던 중앙 군영에서 제작한 국가기록물로서 조선후기의 군사제도를 비롯하여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등의 다양한 분야가 포함된 기록물이다. 군영등록에는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를 지나며 형성된 국방강화와 평화유지라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되어 있으며 동북아시아의 역사상에 시사하는 바가 큰 기록이다. 즉 군영등록은 1615년 인조 재위기간부터 1894년 고종 대(代)까지 약 300년에 걸쳐 기록한 책으로 전체 분량은 89종 689책이며, 기록유산적 가치는 물론 기존의 연대기 자료로 대체할 수 없는 역사적 실상을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한 자료이다.

조선왕조 군영등록은 조선후기 왕실의 호위와 도성의 경비를 담당한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각 군영의 일지류, 규정집, 왕의 거동 수행, 성역 감독, 군사훈련, 시재 및 포상, 재정, 공문 모음, 인사, 민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내용은 기존의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연대기 자료에 없는 내용들이다.

조선왕조 군영등록은 대외적인 침략이나 진출목적에서가 아니라 왕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평화적 군사조직의 기록으로서 군영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작성한 방대한 양의 1차 자료이다. 등록의 기재 방법은 한자를 이용하여 해서체와 초서체를 사용한 필사본이다. 글자체도 매우 유려하여 군사문화의 품격을 헤아릴 수 있다.

조선왕조가 임진왜란이라는 대규모 전면적 침략을 당한 후 국난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설립하였던 군영의 주요 무기는 화약병기로 전환되었다. 특히 훈련도감의 군인에게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화약병기를 다룰 수 있는 군병들이 배치되었으며 이에 따라 병력자원에서 제외되었던 노비와 천민들도 군병으로 선발되었다. 조선왕조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극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군영등록에는 군인 구성에서 출신 성분이 다양하다보니 민초들의 애환도 진솔하게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충청도 덕산에서 살았던 안사민(安七敏)이라는 노비는 전란 중에 훈련도감에 들어가 훈련 성적이 월등하여 정식무관으로 승격되어 근무하던 중 애초에 주인이라는 자가 나타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처지가 위태로워진 절박한 상황에서 효종에게 직접 호소하였다. 임금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이미 안사민은 노비신분에서 벗어났으니 노비의 주인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결과 함께 훈련도감에 근무할 것을 지시하여 사기를 독려했다. 또한 가족들과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운 군인들에게는 전립이나 망건 같은 품목을 파는 것을 허락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함으로써 군인들이 업무에 충실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이외에도 제주도에 표류해 온 벨데브레이(박연)의 이야기, 하멜의 기사도 보인다.

이와 같이 군영등록은 제도사적인 측면뿐 아니라 잔잔한 휴먼스토리가 담겨 있어 조선왕조 생활사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가치 있는 자료이다. 이러한 300년의 기록 속에서 평화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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