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다문화 서포터스 모습. /여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공 |
먼저 한국 정착한 선배들이 다방면 지원활동 '효과'
베트남서 온 서인혜씨 통역·상담 '위기가정' 소통일궈
쭉라이씨 저소득층 낡은 집 수리 '해피하우스' 선사
'아플때 큰 힘' 김윤하·김미연씨 병원진료 '든든한 서포터스'
필리핀 출신 지날린씨 음식고생 초보자에 '요리비법' 전수
왕따걱정서 책추천까지… 노레나씨 '자녀교육' 고민해결해줘
"다문화 가족 여러분, 인생 선배들에게 물어보세요."
처음에는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서 남편과 시부모 등으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한다. '우리 가족이 싫은지' 등의 이유와 함께 '혹시 도망가지는 않을까?'란 생각을 갖게 된 남편과 시부모 등으로부터의 극한 행동(?)에 직면하기도 한다.
문제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언어 소통이 어려워 여성 결혼 이민자들은 음식이 맞지 않아 굶기도 하고 몸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못내기 일쑤다. 아이를 낳아도 육아와 교육이 걱정이고 남편이나 시부모 등이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살림에 보태기 위한 취업을 하는 것도 큰 고민거리다.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각 지자체들은 이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10여년전만 해도 초창기 여성 결혼 이민자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정착 5~10년이 넘어선 여성 결혼 이민자들이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인생 선배로서 모국에서 온 초기 여성 결혼 이민자들의 언니, 친구, 동생이 돼 이들의 어려움을 보살피고 있다.
특히 여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통번역 지원 사업'과 '다문화가족 서포터스' 활동은 입국 초기 여성 결혼이민자들에게 만족도가 높다. 이들 초기 여성 결혼 이민자들과 말벗이 돼 줄 수 있는 모국의 선배들이 사랑으로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정의 통번역지원사 서인혜씨
"한 초기 여성 결혼이민자는 남편의 경제 여건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갔어요. 언어도 소통이 안되는데 말이죠. 남편은 저에게 '부인과 연락이 되느냐?'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서인혜(31·베트남, 결혼 9년 차)씨는 이에 부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며칠 뒤 부인으로부터 '여주로 다시 가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들 부부는 여주시청 사회복지과 상담실에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들 부부는 사회복지과장님과 상담사를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눴고, 오해를 푼 뒤 '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아요. 최근에는 첫 아이도 낳았어요."
서씨는 정규과정을 거친 센터의 통번역지원사다. 이들 같은 위기가정의 대화도 통역해 준다. 베트남에서 와 결혼 9년차인 그는 벌써 세딸의 엄마다. 베트남에서 간호사 공부를 한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통번역지원사로 나섰다.
"매일 한국어 교육은 물론 방문 상담, 각종 양식 작성 등, 그리고 병원, 은행, 학교, 관공서 등 통역이 필요한 곳이면 베트남 입국 초기 여성 결혼이민자들의 언니가 돼 줘요."
그는 초기 여성 결혼 이민자들에게 2~3년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며 센터와 방문 상담을 이용하면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귀띔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한국어 공부는 해야 돼요. 그래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한국어 공부요? 단어와 어휘를 많이 외어야 해요. 그리고 일상에서 간단한 문장으로 대화하면 실력이 늘어요."
서씨는 지금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만족해 하지만 더한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했다.
■주거환경 개선 응우엔 티 쭉라이씨
쭉라이(29·베트남, 결혼 10년 차)씨는 서포터스 활동이 새로운 만남이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기 여성 결혼 이민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더욱 좋다고 했다.
쭉라이씨는 최근 대박을 터뜨렸다. 동갑내기 친구에게 집수리 봉사로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줬기 때문이다.
"입국 10년 차 친구가 있는데 아이가 넷이에요. 육아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고 언어소통도 힘들어요. 남편도 나이가 많아요. 집 환경도 좋지 않아서 아이들을 위해 도와주고 싶었어요."
쭉라이씨 친구는 네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저소득 다문화 가정으로, 주위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집을 구했지만 집이 너무 낡아 이사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이 사연을 접한 센터와 여주시가 여주시여성단체협의회와 지역건설업체의 후원을 받고 사회복지과 직원들이 직접 집수리 봉사에 나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줬다.
■환자를 돌봐 준 김윤하·김미연씨
초기 여성 결혼이민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되는 곳이 병원이다. 아파도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때 이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다문화 서포터스들이다.
김윤하(36·베트남, 결혼 12년차)씨와 김미연(32·중국, 결혼 11년 차)씨는 병원에서 진료와 복잡한 절차, 간호에 이르기까지 가족처럼 여성 결혼이민자들의 건강을 돌봐줬다.
김윤하씨는 "대부분의 초기 여성 결혼 이민자들은 의사 선생님과 대화가 제대로 안돼요. 어디가 아픈지도 몰라요. 이밖에 검사, 주사, 처방전, 약국 등 혼자서는 힘든 일이 많아요. 이럴때 이들의 옆에 있어 줘요. 의지하고 믿을 데가 있으면 병도 빨리 나아요"라고 강조했다.
김미연씨도 "언니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두달정도 입원했어요. 병원에서 혼자 있으면 아프고 외롭죠. 아이들도 걱정이고요. 고향 친구가 옆에서 말 벗이 돼 주고 통역도 해 주니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요? 지금도 집을 방문하면 굉장히 좋아해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평상 시 센터에서 한국어 공부와 새로운 만남을 갖고 정보를 소통하면 입국 초기 한국 생활 적응이 쉽다고 조언한다. 특히 집안 방문 상담과 교육을 이용하면 더욱 좋다고 설명했다.
■요리사가 돼 준 지날린씨
지날린(43·필리핀, 결혼 16년 차)씨는 음식문화가 달라 힘들어 하는 여성 결혼이민자들에게 나름의 비법을 일러준다.
"한국에 처음 와서 잘 차려진 밥상을 보지만 정작 먹을 거는 하나도 없어요. 입맛 이 다르고 한국 음식은 너무 매워요. 그래서 가지, 오이, 감자 등의 야채를 하얗게 볶아 먹으면 좀 나아요. 갈비탕도 괜찮죠. 닭볶음탕은 고춧가루를 빼면 되고요. 요리에는 주로 간장을 이용하면 좋아요."
지날린씨는 일주일에 한번은 초기 여성 결혼이민자들과 모여서 필리핀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이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들에게 힘이 돼 주고 있다.
"어차피 한국에 시집을 왔잖아요. 문화 차이가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조금만 노력하면 풀려요.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잘 가르쳐 줘요."
■아이들의 선생님 노레나씨
노레나(39·우즈베키스탄, 결혼 12년 차)씨는 한국에서 아이들의 학교 교육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위 여성 결혼 이민자들에게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비결을 알려주는데 열심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졸업할때까지 반 친구와 담임 선생님이 같아요. 한국처럼 매년 바뀌는 것과는 다르죠. 그래서 힘들어요. 저도 두 아이를 키우지만 매년 친구와 헤어지거나 선생님이 바뀌면 힘들어요."
노레나씨는 이웃에 있는 초기 여성 결혼이민자들의 자녀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동화책이나 학습지를 추천해 주고 학교에 입학할때는 그들과 함께 담임 교사를 만나 인사를 한다.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은 학교 가는 것을 꺼려요. 대화도 안 되고, 혹시나 나쁘게 인식될까 봐 걱정이 먼저 앞서죠. 그래도 자기 아이들이 차별받거나 왕따가 되지는 않을까 신경을 많이 써요. 학교를 방문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요."
아이들 교육때문에 다문화 서포터스 활동을 시작한 노레나씨는 지금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공부를 위한 센터 강사로도 나섰다. "포기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대한민국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많아요.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배워서 꿈을 이룰 수 있어요."
여주/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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