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가벼움의 가치

김창수

발행일 2016-06-2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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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로 불안·북핵 위협·신냉전 국제관계…
입시경쟁·청년 실업·불확실한 노후 '우울한 사회'
난제들 가볍게 해주는게 정치의 최우선 목표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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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객원논설위원
한국 문화에서 '가벼움'의 가치는 저평가되기 일쑤다. '가벼운 사람'이란 일반적으로 행동이 진중하지 못하거나 경박한 사람을 가리킨다. 가벼움은 무거움이나 둔중함의 반대말이다. 가벼움은 민첩하고 유연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가벼움은 미덕이 분명하다. 의복이나 장신구들은 가벼워야 한다. 모바일 기기는 가벼울수록 고급제품이다. 모바일기기 제작회사는 기능개선 뿐 아니라 '경박단소'한 제품에 사활을 걸고 있다. '더 빨리,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로 요약되는 육상경기와 스포츠활동의 본질도 '누가 얼마나 가벼운가'로 다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언어생활에서 '나비', '잠자리', '새', '날개', '구름', '아지랑이', '산들바람'과 같은 명사의 어감은 생동적이다. 또 '날렵함'이나 '날씬함'과 같은 형용사, '사뿐사뿐'이나 '하늘하늘'과 같은 부사어들은 발랄하고 상쾌하다.

가벼움의 본질은 자유이다. 헤겔은 '가벼움'을 물질을 극복하려는 정신의 근원적 이념인 '자유'라고 해석했다. 물질은 본질적으로 '무게'를 지니고 있지만, 또 다른 형태로의 변화가능성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질의 변화가능성이 바로 가벼움의 개념이다. 가벼움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질 세계의 운동 원리에 조응하는 것이다. 가벼움의 본질을 변화가능성으로서의 유동성, 혹은 유연성이라 한다면 '가벼움'은 '자유'의 본질이자 현상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큰 형벌은 육체적 정신적 자유의 제약이 되는 것이다.

가벼움은 웃음이다. 미학적으로는 엄숙함이나 비장함이 아니라 골계(滑稽)의 범주와 관련된다. 웃음을 유발하는 해학은 한국 문화, 특히 민중문화의 바탕이 된다. 탈춤이 대표적이며, 사설시조나 재담과 같은 언어예술, 민화와 서민 공예품에는 유머가 녹아 있다. TV같은 대중매체에서 코미디나 예능과 같은 '가벼운' 프로그램이 압도적인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소설도 흥미로운 스토리가 위주인 '쟝르소설'이 대세이다. 코미디물은 현실의 무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시민들의 정서적 망명처인 셈이다.

가벼움은 무거움보다 지혜로운 것이다, 진지하고 사려깊은 것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삶이나 현실을 관조하여 그 무게를 덜어내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선의 가벼움이란 현실의 부당한 무게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그것은 풍자의 형식을 띨 수도 있고, 현실의 정면이 아닌 우회적으로 현실을 보는 방식일 수도 있다. 찰나적 위안이나 회피는 '가벼움'이 아니다. 소설가 칼비노는 문학에서의 가벼움은 새의 깃털처럼 무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 몸무게를 감당하면서도 자유롭게 나는 새의 가벼움에 비유한 바 있다. 그에게 가벼움이란 이야기의 구조와 언어적 표현에서 무게를 덜어내려는 시도이다.

미의 본질, 문화의 본질이 '가벼움'이라면 사회도 가볍고 유쾌해야 건강한 것이며 개인들도 행복해질 것이다. 그런데 문득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현실은 겹겹이 난제들이다. 세계경제는 브렉시트로 불안하고, 남북관계는 북핵으로 위협받고 있다. 국제관계는 신냉전의 도래를 우려할 수준으로 긴장의 파고가 높아 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유쾌해야 할 학생들은 입시경쟁으로, 청년들은 실업난으로 고통스럽다. 노인세대는 불확실한 노후 때문에 우울하다. 가공할 무게 앞에 가위눌린 사회와 개인들의 영혼을 가볍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정치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하며, 참다운 문화와 예술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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