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한글로 피어난 여성들의 애절한 사연들

이배용

발행일 2016-07-18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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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생활·사회 등 여러방면을
밝혀내는 귀중한 기록유산으로
애틋하고 진솔한 내용과 함께
서체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이
앞으로도 전통한류로서
우리나라 대표 브랜드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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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우리 민족이 자긍심을 갖게 하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당대에도 한글이 임금으로부터 양반, 서민, 여성들 그리고 천민 계층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는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라는 주제로 조선왕실도서관인 장서각에서 특별전을 열고 있다. 전시장 안에는 장면 장면마다 섬세하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글은 어느 한 계층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계층 간의 소통과 배려 그리고 화합을 지향한 문자였다. 특히 모든 계층에서 사용된 한글편지는 안부와 정감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역시 말이 다른데 글을 남의 나라 글로 쓴다는 것은 사용하는 어휘가 달라 엄청난 한계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 한글 자료들을 보면서 새삼 한글이 없었다면 이렇게 애절하고 애틋한 사연들이 기록될 수 있었을까 하는 안도감과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읽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은 아버지가 딸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시할아버지가 손자며느리에게 그리고 여성 자신들이 그 가슴 속 깊은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한글은 여성의 문자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은 더 이상 글을 읽는 독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뜻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편지뿐 아니라 문서 및 각종 기록을 직접 작성하면서 문자생활의 영역을 점차 확장시켜 나갔다. 여성의 역할이 요구되는 음식, 의복, 제사 등을 비롯하여 그들의 한평생에 이르기까지 기록으로 남겼다. 한평생 규방의 생활을 기록한 고행록, 음식조리법에 관한 기록, 관가에 억울함을 호소한 소지, 원정, 상언 등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의 애환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비로소 한글이 창제됨으로써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중 한 예로 시집간 딸을 향한 어머니의 애틋한 모정이 편지에 담겨 있는 '어머니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에는 한 여인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편지는 1977년 충북 청원군 북일면 일대가 비행장 건설 공사로 한창일 때 산재한 무덤들을 이장하면서 순천김씨 묘에서 발견되었다. 대량의 종이뭉치 속에서 192개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그중 3매는 한문으로 적혔고, 189매는 한글편지였다. 이 가운데 순천김씨의 친정어머니인 신천강씨가 쓴 것이 128매나 된다. 이 편지를 쓴 시기는 1560년대에서 1580년대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한글이 창제된 지 백 년 남짓된 시기에 지방의 사대부가에서 편지글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한글의 보급과 전파 속도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 내용은 딸의 해산 소식을 묻고, 민씨 집안에 시집간 막내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과 함께 첩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심경이 진솔하게 표현되고 있다.

또 하나의 예로 한산이씨 고행록은 거의 6미터(5m 84cm)에 달하는 두루마리에 깨알같이 찬찬하게 정성들여 손수 한글로 썼는데 자신이 평생 동안 겪은 슬픔과 고통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겨 자손에게 보이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한산이씨는 숙종 대에 남인 사대부 유명천의 부인으로 '고행록'에는 한산이씨의 탄생부터 회갑까지의 삶이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수많은 고난을 의연히 감내해 온 종부답게 비교적 담담하게 서정적으로 술회하였으나 마지막 구절에서는 지난 세월 서러움에 벅차 여성으로서 겪었던 한 많은 세상의 회한을 토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여성들이 기록한 한글은 문학사, 생활사, 사회사 등 여러 방면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기록유산이다.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아름답게 이어지는 한글로 쓴 이야기들은 내용의 애틋함, 진솔함과 함께 서체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이 앞으로도 전통한류로서 우리나라의 대표브랜드가 될 것이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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