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 레임덕,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이영재

발행일 2016-07-26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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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국민 모두 슬프게 만들어
박대통령 휴가후 "어!" 할 정도로
국정쇄신 위한 확 달라진 새판 기대
야권 공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오직 국민을 위해서라도
이 따위쯤은 슬기롭게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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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박근혜 정부가 레임덕에 들어섰느냐 아니냐가 논란이 되는 요즘이다. '레임덕 (lame duck)'은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이리저리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처럼 정책 집행을 갈팡질팡한다고 해서 유래된 말이다. 원래는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의 남은 임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권력누수현상을 지칭한다.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레임덕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절대권력'이지만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레임덕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뜻이지만, 왠지 '권력의 비정함'을 조롱하는 말로 들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대통령의 임기 개시일 이후 30일의 범위까지 존속하는 임시기구다. 박 대통령의 인수위원장은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전인 2013년 1월24일 첫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전관예우, 부동산 투기의혹 등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불과 5일 만에 낙마했다. 인사청문회도 치르지 못했다. 그의 상처난 도덕성이 기자의 취재망에 우연히 걸린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대통령 당선인을 흔들기 위해 정보를 제공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새 총리 지명자를 찾느라 시간은 허비됐고 조각 일정에 큰 차질을 빚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홍원 총리가 발탁됐지만 세월호참사가 터져 자진사퇴한 후 총리로 지명된 안대희 후보자는 법조계 전관예우로, 언론인 출신 문창극 후보자는 역사인식 논란 등에 휩싸이며 연속 낙마했다.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련의 사태들이 '우연'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대통령 집권 후반기 레임덕일 때 일어날 것이 집권 초반에 나타났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탁월한 '동물적 감각'에 늘 놀라곤 한다. 우리의 정치인들은 저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돌아다니는 하이에나보다 더 놀라운 후각과 청각을, 여기에 미래를 들여다보는 예지력까지 갖추고 있다. 서산으로 떨어지는 권력과 바야흐로 떠오르는 권력에 줄을 서는 결단력은 거의 신의 경지에 다다른다. 지금 우리 정치판에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레임덕'은 공무원 사회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정치권'부터 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서, 사실, 걱정이다. 아무리 '아니다'라고 부정해도 이미 우리 사회는 레임덕의 어깨를 타고 벌써 대선정국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대통령 5년 단임제에서 집권 4년차의 레임덕 현상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래서 대개 차기 대선주자들의 본격 행보를 레임덕의 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런 면에서 사드 논란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던 지난 14일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1천500명을 모아 놓고 '대표 2주년 행사'를 치른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 최경환·윤상현 의원이 지역구를 옮기라고 특정 예비후보를 협박·회유하는 목소리가 녹음으로 공개돼 벌집을 쑤셔놓은 것도,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온갖 소문들이 마치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솟구쳐 나오면서 청와대를 압박하는 것도 모두 레임덕의 징후들이다.

갈이천정 (渴而穿井). '목이 말라야만 그제서야 우물을 판다'는 뜻이지만 '자신에게 닥쳐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무심하다가도 막상 급한 일이 발생하거나 필요한 일이 생기면 스스로 나서 해결하게 된다'는 의미다. 병이 깊어진 뒤 약을 쓰는 것은 목이 마르고서야 우물을 파고, 싸울 때가 돼서야 무기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다. 아직도 임기는 1년 5개월이나 남았다. 야권은 레임덕이 왔다며 청와대에 정치적 공세를 쏟아붓지만, 레임덕은 대통령만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시기만 달랐을 뿐, 결국 경험했던 레임덕은 우리 국민 모두를 슬프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의 휴가가 끝난 후 국정쇄신을 위한 새 판짜기가 진행될 것이란 소문도 무성하다. 청와대 집무실로 돌아온 후 국민이 "어?"할 정도로 확~ 달라진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야권의 공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오직 국민을 위해서라도 이 따위 레임덕은 슬기롭게 극복돼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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