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고택기행·31] 배다리 '조흥상회'

배다리, 빛바랜 상점은 아직도 추억을 팔고…
{ 조흥상회 : 건축 기록없어 1948년 미군촬영 사진에서만 확인 }

신상윤 기자

발행일 2016-08-04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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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고택기행 배다리 조흥상회1
인천 동구 배다리 초입에 위치한 조흥상회(趙興商會)는 조(趙) 씨 일가의 번영(興)을 바라며 이름을 붙였다고 알려졌다. 조흥상회는 과거 쌀, 제수 용품, 잡화 등을 팔며 배다리를 찾는 사람들 명소였다. 간판만 남기고 사라진 그 자리에 지금은 배다리 안내소, 요일가게, 나비날다(책방) 등이 입점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쌀·잡화·제수용품 등 공급처
평행사변형 독특한 구조 뒤편
마당까지 갖춘 한옥 붙어있어

목 좋은 자리 '장사 잘되던 집'
지역의 흥망성쇠와 운명 함께

오래 방치되다 다시 활기 찾아
배다리 역사 전시관으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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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960년대 인천의 번화가를 꼽으라면 동구 배다리 일대를 빼놓을 수 없다. 인천 송현초등학교와 중앙시장 인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를 대는 다리가 있어 '배다리'라고 일컫는다. 

 

배다리가 있는 인천 동구 일대는 인천항 개항과 맞물려 일본군들이 인천 중구 개항장 일대에 주둔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배다리 시장에서 중앙시장으로 변화해 가며 인천 동구 배다리 일대는 흥망성쇠를 함께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에서 가장 목이 좋은 장소에 '조흥상회'가 있었다.
 

가게 주인 고(故) 조종택 씨가 조(趙) 씨 일가의 번영(興)을 바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조흥상회는 쌀과 각종 잡화를 팔기도 했고, 제기·과일·과자 등 제수 용품을 팔았다고도 전해진다. 가게 위치도 좋았을 뿐 아니라 이름 덕분에 조흥상회는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조흥상회 건물은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과 도원역 사이 경인선 철길 아래 인근에 있다. 지금은 배다리안내소, 요일가게, 나비날다(책방) 등이 조흥상회를 대신해 건물에 들어선 가운데, 이 곳을 찾는 시민과 외지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연중기획 고택기행 배다리 조흥상회 내부 집2
조흥상회 건물 뒤편으로 들어가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초록색 기와를 얹은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달 27일 오후 배다리안내소의 주인장 청산별곡(별칭을 본명 대신 사용)의 소개를 받아 건물을 둘러봤다.

이 건물 2층 상단부에 적힌 '조흥상회' 네 글자가 간판 역할을 했으며, 외벽은 인근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민트색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조흥상회 건물은 평행사변형 형태의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건물 안쪽으로 연결된 문을 통하면 조흥상회 뒤편에 가려진 한옥 한 채가 나타난다.

청산별곡은 "조흥상회 건물이 밖에서 가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잘 볼 수 없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사각형 형태의 한옥이 붙어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종택 씨가 가게 운영은 바깥 건물인 조흥상회에서 하고, 안쪽 건물인 이 집에서 거주했다고 들었다"며 "얼마 전까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지인들과 함께 거주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한옥은 4개의 방과 거실, 작은 마당, 우물 등도 갖추고 있다.

연중기획 고택기행 배다리 조흥상회 전시실1
조흥상회 2층 일부 공간은 근현대 인천 일대에서 사용했던 물품들을 전시하는 배다리 생활사 전시관이다.

조흥상회의 초창기 모습은 기와를 올린 2층 건물이라고 전해진다. 정확히 언제 지어졌는지 남아 있는 기록은 없으나, 미군 노릅 파이어(Norb-Faye) 씨가 1948년 촬영한 사진 가운데 조흥상회 건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흥상회 2층은 한옥의 안채와 연결된 방을 비롯한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사랑채 등의 용도로 활용됐으나, 지금은 타로점과 뜨개질 공방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공간은 조흥상회 건물이 한동안 폐허처럼 방치돼 있을 때 남겨졌던 그릇과 재봉틀, 조흥상회 영수증 등 근현대 생활물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또 조흥상회 건물 옆에는 빨간 벽돌로 쌓아 올린 창고가 있는데, 이 창고 상량문에 적힌 '1956년' 문구를 통해 건축 연도를 추측할 수 있다.

창고는 당초 2층 건물이었지만, 청산별곡이 1층과 2층 사이를 터 천장을 높였다고 한다. 지금은 매일 주인이 바뀌어 운영되는 '요일가게'로 사용되고 있다.

조흥상회의 옛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배다리 삼거리에서 '배다리 솥 주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오정신(74) 사장에게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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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상회 옆에 붙어 있는 빨간 벽돌 창고 내부의 모습. 과거 물건을 보관했던 장소가 지금은 매일 가게 주인이 바뀌는 요일가게로 활용되고 있다.

오 사장은 18세(1963년) 때 배다리 인근에서 작은 할아버지로부터 솥 가게 일을 배웠고, 1966년부터는 조흥상회 1층에서 '배다리 솥 주물' 가게 운영을 시작했다.

오 사장은 "배다리에서 조흥상회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며 "빨간 벽돌 창고에서는 제수용 과자, 옥춘(설탕 녹여 만든 과자), 약과 등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오 사장은 조흥상회 건물 1층에 한 칸을 세 내 '배다리 솥 주물' 가게 운영을 했다.

그는 "조종택 사장 내외가 가게를 싸게 내 준다고 해서 조흥상회 건물 1층에서 솥 장사를 시작했다"며 "당시 배다리 인근은 중앙시장을 비롯해 조흥상회와 우리 가게까지 어느 하나 안 되는 가게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오 사장은 "조흥상회 건물은 2층까지 벽돌을 쌓아 올려 인근에서 이 정도 규모를 찾긴 어려웠다"며 "2층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일본식 다다미방 모양의 방이 있고, 한쪽 방에는 제기용품이나 과일, 과자 등이 잔뜩 쌓여 있었다"고 말했다.

25년가량 조흥상회 건물에서 솥 장사를 하던 오 사장은 조 사장이 가게세를 계속 올리는 바람에 배다리 인근 가게를 전전하다 지금의 위치로 이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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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클릭아트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조흥상회는 인천 동구 배다리 일대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소문이 난 곳에 위치해 있어 그 일대의 흥망성쇠와 길을 같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흥상회 건물은 배다리 일대가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된다. 청산별곡이 지난 2012년 건물에 입주하면서 조흥상회 건물은 다시 한 번 손님 몰이를 하고 있다.

청산별곡은 "조흥상회는 한동안 온갖 쓰레기들이 방치돼 있어 거의 죽은 집과 다름없었다"며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전 주인들이 버리고 간 근현대 생활 물품들이 발견됐고, 지금은 배다리 생활사 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공개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천의 '배다리'는 과거 헌책방 거리로도 유명했는데, 배다리 안내소와 요일가게, 서점 등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배다리가 부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 신상윤기자 ssy@kyeongin.com·사진 =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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