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이간질의 정치를 넘어

윤진현

발행일 2016-08-08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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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라는 '황금사과'가
결국 한반도에 떨어지고 말아
성주 주민-외부인 프레임 이분
분열의 전쟁스킬 자국민에 사용
그 본의 짐작하기 두려울 지경
모든 말 모아 길 찾아야 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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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는 트로이전쟁의 이야기이다. 사람과 신이 두 패로 나뉘어 트로이가 완전히 초토화될 때까지 싸웠던 이 엄청난 전쟁의 시작은 '황금사과' 한 알이었다.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Eris)는 인간과 신이 모두 모이는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자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는 글씨가 씌어있는 황금사과 한 알을 연석에 던졌다. 이에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은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며 다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의 분쟁은 양치기로 일하던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튀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었고 사과를 받은 쪽과 받지 못한 쪽은 트로이와 아테네로 나뉘어 전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화는 인간과 역사의 진실을 대단히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명사는 당연히 '황금사과'요, 동사는 '받다'이다. '황금사과'는 비싸고 가치 있고 갖고 싶지만 이롭지 만은 않은, 말하자면 불화의 상징이며 이것은 '받다'를 결정하는 인간의 의지에 연속된다.

'사드'라는 위력적인 '황금사과'가 결국은 한반도에 떨어지고 말았다. 일본의 군비확장도 예사롭지 않은 마당에 중국의 동태까지 불안한 조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정세에 앞서 한국사회의 분열과 불화가 더욱 걱정스럽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국민의 한 목소리를 성주 주민과 외부인의 프레임으로 이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인의 너머에 종북과 같은 색깔론이 이어지는 것은 자동옵션이다.

그런데 본래 분열은 적을 교란하는 효과적인 기술이다. 흔히 '간계(間計)'라고 하거니와 이간질로 틈을 만들고 화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수행하는 자를 간자(間者), 세작(細作)이라고 하니 '간첩'이란 바로 적국의 화합과 안녕을 해치기 위해서 파견된 이러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실물로 사람을 보내지 않고도 이간질을 꾀할 수 있는 허다한 방법이 있으니 세계 각지의 분쟁과 참사의 이면에 부당하고 편협한 여론의 증폭이 있는 것은 이미 비밀도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열의 전쟁스킬이 적국이 아니라 자국민에게 사용되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다. 걸핏하면 건강한 비판의식을 가진 많은 국민을 적국을 따르는 자들로 모함하는 것도 용납되기 어려운 일인데, 국가의 중대사를 국민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지역의 주민문제로 한정하고 함께하는 많은 국민을 '외부인'이라 제외하며 이간질하다니 그 본의를 짐작하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설마 자국민을 적국민 보듯 경계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솟구치는 것이다. 이미 국민을 '개, 돼지'에 비한 바도 있으니 의심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것을 솥뚜껑보고 놀란 가슴이라고 나무랄 수도 없지 않은가.

정치(政治)라는 단어는 바름(正)을 드러내도록( /文) 흐르고(水) 키우는(台) 데서 만들어졌다는 멋진 표현은 그저 원론일 뿐일까? 지난 4월 13일 총선, 20년만의 여소야대 국회에 국민이 요구한 것은 바른 정치의 회복이었다. 국민은 그간 한쪽으로 치우쳤던 국정의 균형을 잡고 다수의 전횡이나 독단을 막으며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협력하는 자세와 지혜를 요구하였다. 성미 급한 한국인에게는 어쩌면 느리고 소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 수 있나? 바늘 허리에 실을 매서는 바느질을 하기는커녕 귀한 실이 엉켜 못쓰게 될 위험마저 커질 뿐이다. 대화 없이, 충분한 판단과 이해 없이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능사는커녕 오해와 분란만 키운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지 않은가.

다시 '불화의 황금사과'로 돌아가자. 이야기 속의 파리스 왕자는 결국 황금사과 값으로 차지했던 아내도 빼앗기고 부모와 형제는 모두 죽고 노예가 되었으며 조국 트로이는 풍비박산이 났다. 놀라운 것은 전쟁을 야기했던 신들은 여전히 신으로서 올림포스에서 잘 살았다는 것이다. 만 사람이 만 가지 말을 하는 것을 시끄러워 할 것이 아니다. 해당지역 주민이다, 아니다 나누고 배제할 일도 아니다. 모든 말들을 모두 모아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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