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 문학평론가 |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염정(艶情)과 상열지사(相悅之事)는 동서고금의 다반사요, "해가 뜨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근대의 연애는 그 사소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의미망을 이루고 있다.
연애란 말은 조중환의 번안소설 '쌍옥루'(1912)에서 처음 등장했다. 본디 그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 정치적 이해로 얽힌 정략결혼이나 육욕적인 사랑과 구별되는 고결한 감정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백인 귀족 남성들이 개발한 신개념이었다.
근대계몽기 자유연애는 근대적 주체 형성의 인큐베이터였다. 요컨대 그것은 사회적 구습과 금제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감정의 해방운동이면서 동시에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 개조하며 사회를 변혁하려는 근대적 개인들의 고투를 상징하는 문명화의 기표(記標)였다.
반면 장르문학으로서의 연애는 이 같은 역사성과 문화정치적 의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사회적 기반이 다른 두 남녀가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사랑을 완성한다는 본연의 공식에 충실할 뿐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처럼 세상물정 모르는 상류계급의 여성과 강직하고 능력이 뛰어난 중산층 출신의 알파남의 '밀당'과 사랑을 다루거나, 부와 지위를 지닌 상류사회 남성과 평범녀의 사랑이라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연애소설은 또한 예민한 사회학적 장르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근대사회 초기 여성들에게 결혼 이외에는 경제와 생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었기에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환상적인 결혼 곧 '신데델라의 이야기'가 여성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권신장과 함께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가능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의 감정과 선택에 따라 사랑을 실현하는 알파걸들의 이야기라든지 짐승남을 내 뜻대로 길들이면서 완고한 사회관습과 대결을 펼치는 로맨틱 드라마들이 여성독자의 공감을 얻는다.
전자의 연애소설은 여성으로 하여금 묵묵히 고통을 견디고 자신을 구원해줄 남성을 기다리며, 근사한 남성과의 결혼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도록 한다는 점에서, 즉 여성을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타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반여성주의적인 장르다.
후자의 연애소설 또한 여성이 마치 삶을 결정권을 지닌 주체적 존재로 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즉 여성독자들을 여전히 남성에게 삶의 결정권을 부여하는 가부장적 여성(patriarchal woman)으로 주체화한다는 점에서 반여성주의적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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