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경기, 문화원형으로 읽다·2 ] 이천 효양산 은혜 갚은 사슴 이야기

'서희 가문' 품은 神靈한 산의 정기 굽이굽이 흐르다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6-08-24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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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_이천 서희1
사슴의 보은으로 태어난 서필. 그의 둘째 아들인 고려 최고의 협상가 서희 선생의 고향인 이천시 마암리 효양산 자락에 서희테마파크를 조성해 1000년 전 거란 80만 대군을 담판협상으로 무찌른 서희 선생의 애국·보국 정신을 되새기도록 했다.

역사적 인물들의 일대기 드라마틱하게 접목 '선녀와 나무꾼'과는 다른 결말
서필·서눌 등 집안 3대 모두 정승 이름 떨쳐… 서신일 묘자리 '최고의 명당'
금송아지·금베틀 설화 이천의 무한 가능성… 내달 '서희문화제' 자부심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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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슴 한마리가 황급히 나무꾼에게 달려오더니, 사냥꾼이 쫓아오니 숨겨달라고 애원했다. 사슴의 몸에는 화살이 박혀있었다. 나무꾼은 사슴을 숨겨주고 사냥꾼에게는 사슴이 저쪽으로 갔다고 말해 사냥꾼을 따돌렸다. 은혜 갚은 사슴이야기의 전반부다.

전래동화 '선녀와 나뭇꾼'에서는 목숨을 구한 사슴이 나무꾼에게 선녀가 목욕하는 연못의 위치를 알려준다. 나뭇꾼은 선녀와 결혼해 아이 셋을 낳는다.

이천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결말은 이와 다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覺)' 등의 옛 문헌에도 소개되어 있는 은혜 갚은 사슴 이야기는 역사적 인물들의 일대기와 접목돼 보다 생생하고, 드라마틱하다.

사슴을 구해준 사람의 이름은 서신일이다. 그는 여든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사슴의 목숨을 구해준 날 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났다.

산신령은 서 씨에게 "그대가 구한 사슴은 나의 아들"이라며 "곧 나라의 큰 인물이 될 아이를 얻게 될 것이며 자자손손 크게 번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 달 후 정말로 아들이 태어났다. 천수를 다한 서 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슴이 다시 나타나 상주의 옷자락을 물고 이끌었다. 상주는 사슴이 안내한 곳에 서 씨의 묘를 썼다.

# 서 씨의 아들은 고려 광종 때 내의령(內議令)을 지낸 정민공 서필(徐弼)이다.

서필은 성품이 곧고 바른 말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보면 임금에게라도 간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치를 좋아하는 광종이 신하들에게 금으로 만든 술잔을 하나씩 선물했는데, 서필은 받지 않았다.

왕이 사양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신이 비록 재상 자리에 있다고는 하지만 평소 임금님을 잘 보필하지 못한 터에, 이제 금 술잔을 내려 주시니 더욱 황공하고 분수에 넘치는 일입니다. 의복과 그릇의 쓰임에는 각각 구별이 있어야 하고, 사치와 검소한 정도에 따라 나라의 치란(治亂)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만일 신하들이 모두 금 그릇을 쓴다면 임금님께서는 장차 어떤 그릇을 쓰시겠습니까?" 라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필은 아들을 셋 두었는데, 둘째 아들 서희는 거란의 80만 대군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단신으로 적장 소손녕(蕭遜寧)을 만나 피한방울 흘리지않고, 외교력만으로 나라를 구했다.

소손녕은 고려가 거란의 땅을 침식하고 있으며, 거란과 땅을 접하고 있는데도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고 있어 침입했음을 밝혔다. 근본적인 이유가 후자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던 서희는 "우리나라는 곧 고구려의 옛 터전을 이었으므로 고려라 이름하고 평양(平壤)을 도읍으로 삼은 것이다.

만약, 지계(地界)로 논한다면 상국(上國)의 동경(요양遼陽)도 모두 우리 경내에 들어가니 어찌 침식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압록강 안팎도 역시 우리 경내인데 지금은 여진이 그곳에 도거(盜據)해 완악(頑惡)하고 간사한 짓을 하므로 도로의 막히고 어려움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심하다.

조빙(朝聘)을 통하지 못하게 된 것은 여진 때문이니 만약에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게 하여 성보(城堡)를 쌓고 도로가 통하게 되면 감히 조빙을 닦지 않겠는가"라고 반박, 설득했다. 서희의 언사와 기개를 본 거란은 싸우지 않고 철병했다. 서희는 그 후로도 북진을 개척해 고려의 국방력을 튼튼히 하는데 힘썼다.

서희의 아들 서눌(徐訥) 또한 정종때 높은 관직에 오른 문신이다. 이처럼, 3대가 모두 정승의 지위에 올라 크게 이름을 떨치고, 그 후손들이 번창해 이천 서씨 가문의 일대 중흥을 일으켰다. 후손들은 이 모든것이 신일이 사슴을 구해준 은덕이며, 사슴이 잡아준 신일의 묘자리가 둘도 없는 명당이라고 여겼다.

사슴의보은8(이천 서희)
1 사슴을 숨겨 사냥꾼을 따돌린 서신일2 사슴의 보은으로 여든의 나이에 아이를 낳은 서신일.3 서희선생이 18세에 과거급제해 금의환향.4 거란의 80만대군 고려 침략.5 적장 소손녕과의 역사적인 담판.6 압록강까지 국경을 넓힌 서희.

# 서신일의 묘가 있는 곳은 이천 효양산이다.

200m가 안되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이천 사람들에게 효양산은 '우주산'이다. 그만큼 효양산에는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도 많고, 보물과 명당도 많다. 가장 잘 알려진 보물은 금송아지다. 중국 황제가 아침에 세수를 하는데 대야에 금송아지가 보였다. 점쟁이는 이 금송아지가 효양산에 있다고 일렀다.

황제는 금송아지를 몰래 가져오라며 신하를 보냈다. 이천 작별리에 다다른 신하는 머리가 하얀 노인에게 효양산이 어디냐고 물었다.

노인은 "이 길을 계속 걸으면 오천 고을이 나오는데, 오천 고을을 지나 억만리를 가서 다시 이천장을 지나가면 억억다리가 있지. 억억다리를 건너면 구만리벌판이 나오는데 그 건너편에 있는 산이 효양산"이라고 말했다.

노인은 덧붙였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중국으로 장사를 가셨는데 하도 오지 않으셔서 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못 만났고, 이 지팡이도 원래 두 자가 넘었는데 다 닳아서 손바닥만큼 짧아졌소." 이 말을 들은 신하는 금송아지를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이 노인은 금송아지를 지키려는 효양산 산신령이며, 금송아지는 아무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효양산에는 이 베틀로 짠 옷을 입으면 사람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하늘을 날게 된다는 '금베틀'과 무엇이든 그릇에 담는대로 가득 찬다는 '화수분'도 있다.

이천문화원 이동준 사무국장은 "구만리뜰이나 억억다리 등은 모두 이천에 실제하는 지명으로, 이런 설화들은 이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보물에 관한 설화가 보물의 효험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천의 미래도 사람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이천시는 2005년부터 효양산 전설문화축제를 열어 청소년과 시민들이 고장의 전설과 역사를 알게하고, 화합하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올해부터는 '서희문화제'로 이름을 바꿔 9월 10일 서희테마파크에서 개최한다.

이천시의회 김하식 의원은 "전설문화축제는 효양산이 있는 부발읍에서 읍단위의 작은 행사로 시작됐다. 읍민들과 초등학생들의 백일장을 치르며 서희선생의 외교능력을 통해 화합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천은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 주변 지역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전설과 문화적으로도 발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효양산과 서희선생이라는 인물은 이천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 할 만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전 국민이 참여하도록 대상을 확대했다.

앞으로 이천의 문화원형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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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사진 =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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