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 임형신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

'인천상륙작전' 빛나는 역사 뒤로 잊혀진 희생 있었다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6-08-31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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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임형신 해군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23
영화 '인천상륙작전' 제작 과정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임형신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이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된 '엑스레이 작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화 제작과정에 자문위원 참여… 임무특성상 기밀이었던 첩보부대 재조명 의미
'엑스레이 작전' 맥아더 지시아닌 우리 해군 단독 수행… 극중 설정과 실제 '차이'
일회성 반짝 흥행 아닌 전사자 명예회복 위한 정치권·정부·국민들의 관심 절실

인천상륙2
한국전쟁 초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주역이지만, 역사가 되지 못하고 기억 속에 묻혔던 대한민국 해군 첩보부대(UDU·Underwater Demolition Unit)가 영화 '인천상륙작전'으로 되살아났다.

유엔 연합군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 22일 전인 8월 24일 새벽, 해군 첩보부대원 17명은 인천 영흥도 십리포 해안으로 잠입했다. 이들은 상륙작전 직전까지 인천 월미도 등에 있는 해안포대 위치와 부대 규모 등을 파악해 일본 도쿄 연합군 사령부에 보고했다.

우리 해군의 첩보활동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일명 '엑스레이(X-RAY) 작전'이라 불린 당시 해군 첩보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7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자,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이 연합군인 줄로만 알았던 대다수 국민은 반세기 넘게 베일에 싸여있던 해군 첩보부대의 활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작전'을 비롯한 해군 첩보작전사를 발굴하고 있는 임형신(47)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 회장은 "정부와 국민이 무관심했던 한국전쟁 당시 해군 첩보부대의 공로와 희생이 영화를 계기로 널리 알려져 반갑다"며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면 또다시 잊히는 '일회성 관심'이 아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군 첩보부대 36기 출신인 임형신 회장은 영화 '인천상륙작전' 제작 과정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그가 '엑스레이 작전'을 수행했던 당사자들과 군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자료가 영화의 뼈대가 됐다.

1946년 3월 대한민국 해군에 '정보과'가 생기면서 창설된 해군 첩보부대는 '북파(北派) 첩보활동'이 주 임무인 특성상 2000년대 초반까지도 부대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다. '엑스레이 작전'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6일 인천 중구 신포동에 있는 해군 첩보부대 동지회 사무실에서 임형신 회장을 만나 영화 '인천상륙작전'과 해군 첩보부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정부와 인천시 등이 해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면서도, 정작 '엑스레이 작전' 전사자들에 대해선 외면하고 있는 섭섭함도 토로했다.

- 영화 '인천상륙작전' 엔딩 크레딧에 '첩보사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를 본 소감은.

"재미있게 잘 봤고, 당시 해군 첩보부대의 활약이 재조명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컸다. 좋은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해줬기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는 감동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본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제공한 입장에서는 영화가 실제 '엑스레이 작전' 역사와 완전히 부합하지 않아 아쉽긴 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내가 주장했던 바가 정확히 반영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엑스레이 작전'이 널리 알려지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장학수(이정재) 대위와 첩보부대원 남기성(박철민) 단둘이서 월미도 해안포대를 기습하는 후반부 클라이맥스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엑스레이 작전'에서 전사한 고(故)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를 모델로 삼은 장면이다.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실제로 전사한 곳은 월미도(영화상 설정)가 아닌 영흥도에 있던 엑스레이팀 본부다. 엑스레이 작전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원 17명은 9월 13일 철수 명령을 받았는데, 이들 가운데 6명은 남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영흥도에 남았다. 그런데 엑스레이팀이 영흥도에 주둔해 있는 것을 알아챈 북한군이 9월 14일 본부를 기습했고,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적들을 유인해 나머지 부대원 4명을 탈출시켰다. 임 중위와 홍 하사는 적에게 포위되자 기밀 유지를 위해 자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속 설정과 실제 '엑스레이 작전'은 어떻게 다른지 좀 더 설명해달라.

"영화상에서는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연합군 총사령관이 '엑스레이 작전'을 직접 지시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해군이 단독으로 수행한 작전이었다. 해군 정보국장을 맡은 함명수 전 해군 참모총장(엑스레이 작전 당시 소령)이 1950년 8월 12일 당시 손원일 제독에게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인천상륙작전에서 한국군의 유일한 단독작전이었다. 상륙작전에 참전한 우리 해군 함정과 해병대 등은 연합군에 편제돼 있었기 때문이다. 영흥도를 통해 인천에 잠입한 엑스레이팀은 인부로 위장해 북한군의 지하포대 진지 구축 공사나 도로 포장공사 등에서 막노동하면서 해안포대 위치 등을 파악했다. 영화에서는 해군 첩보부대가 '지뢰 부설해도'를 입수하는 것이 주요 임무지만, 실제로는 어디서 나와 쏠지 모르는 해안포대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엑스레이팀의 첩보활동은 부산에 있는 해군본부를 거쳐 도쿄 연합군 사령부로 보고됐다. 9월 1일 미군 첩보부대 유진 클라크(Eugene F. Clarke) 대위가 이끄는 연합군 공식 첩보팀이 영흥도에 합류하고 나서부터는 클라크 대위를 통해 도쿄 사령부로 직접 보고했지만, 작전은 별개로 수행했다. 영화에서는 인천상륙작전 개시 직전 북한군과 전투 끝에 팔미도 등대를 탈환했는데, 당시 팔미도 등대에 북한군 병력은 없었다."

인터뷰 공감 임형신 해군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14

-영화 흥행으로 해군 첩보부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군 첩보부대원 시절은 어땠으며, 첩보부대 역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중국 무술인 '우슈' 선수로 활동했다. 21살 때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출전 준비를 하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군 입대를 해야 했다. 특수부대를 지원했는데, 연락을 받고 병무청에 가보니 군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부대 이름을 알려줄 수 없는 데 지원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 고민하다가 승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북파 첩보부대원을 뽑는 '물색관'이었다. 해군 첩보부대 입대 후 여러 섬을 다니며 육·해·공 특수전과 첩보전술 훈련, 전문화 과정 등을 거쳤다. 북한 김일성 장군가(歌)와 북한 인민으로서 갖춰야 할 언어 등을 배우는 '생활화 훈련'도 받았다. 3년 동안 첩보부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제대한 이후 해군 첩보부대 동지회 활동 등을 통해 선배들은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제대 후에는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배우며 무술 도장 사범으로 아르바이트하다가 꿈을 접고 귀국했고, 이후 건설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틈틈이 공부한 끝에 2003년 고려대학교 북한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해군 첩보부대 역사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작전' 당시 첩보부대장이자 동지회 원로인 함명수 전 해군 참모총장이 제공한 자료와 증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군으로부터 받은 자료도 고증에 많은 참고가 됐다."

-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으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인천 월미도 월미공원 내 '해군 첩보부대 충혼탑'을 2009년 건립했는데,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내느라 많이 고생했다. 2006년 충혼탑 건립위원회를 꾸린 뒤부터 국방부, 해군본부, 국가보훈처, 인천시, 옹진군 등 관련 기관은 전부 찾아다니며 충혼탑 건립 취지를 설명했다. '엑스레이 작전' 등 해군 첩보부대의 공로를 이야기하자 '거짓말하지 말라'며 야단친 공무원도 있었다. 2년 동안 부지런히 설득해 국방부, 국가보훈처, 인천시 등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동지회원들이 모금해 총 6억 원을 들여 충혼탑을 세웠다. 이때부터 매년 9월 14일(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전사한 날) 충혼탑에서 해군 첩보부대 전사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헌신한 첩보부대원들을 기리는 행사에 해군, 인천시장과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권에서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지난해 인천상륙작전 개시일인 9월 15일에 추모제를 개최했을 때 처음으로 해군 참모총장이 참석했을 뿐이다. 인근에서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인천상륙작전 재현 등 전승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등 축제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우리는 서글프기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유정복 인천시장과 함께 해군 첩보부대 충혼탑을 찾은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작 충혼탑의 주인공인 해군 첩보부대 동지회 측에는 연락이 없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중에만 정치권이나 국민들이 '반짝 관심'을 갖는 게 아닌가 우려하는 이유다. 앞으로 해군 첩보부대의 명예회복에 정부나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두길 바란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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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신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은?

-1969년 강원도 횡성군 출생
-인천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북한학과·법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국가정책) 수료
-해군 첩보부대 36기(1990~1993년 복무)
-대한민국 특수임무국가유공자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군사안보 연구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
-해군 첩보부대 중앙동지회 수석 부회장
-영화 '인천상륙작전' 첩보사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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