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경기, 문화원형으로 읽다·3] 광주 엄미리 장승

마을 어귀 접어들면
수염도 달고 붉은 칠 한
'잘생긴 장승'이 마중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6-08-31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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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_광주 엄미리 장승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엄미리마을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 장승. 평안과 지역분들의 무병을 기원하기 위해 2년에 한번 지내는 엄미리장승제는 제례의식을 370년동안 치르고 있다.

병자호란 이후 '수호신앙' 기억과 경험으로 제작 전승
'서울70리·수원70리' 이정표 역할… 세월따라 키 줄어
88올림픽 선수촌 장식·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되기도
2년마다 장승제·'문화적 가치' 학계·언론 관심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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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변질이 제일 안된 데가 여기야. 옛날 그대로지."

광주 장승이 유명한 이유를 물었더니 공재범(78) 할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광주시 중부면 엄미리에서 일평생을 산 공씨 할아버지는 뭣때문에 장승에 대해 물어보느냐고 통박을 주면서도 장승자랑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 장승이 잘 생겼어. 예전에 아버지랑 당숙이랑 공주가서 장승깎기를 했는데 우리가 1등을 하고 왔어. 다른 데는 이도 엉성하고 사나워 보이기도 하는데, 엄미리 장승은 수염도 달고, 얼굴에 칠도 하고. 저기 산에 아주 빨간 흙이 나오는 데가 있어. 그걸 물에 개서 칠하면 비가 와도 씻겨내려가지를 않아. 다른 데서는 하고 싶어도 못하지. 그 흙이 여기서만 나니까."

문화부_장승
①퇴촌면 우산리 천하대장군.② 중부면 엄미리 천하대장군.③ 목현리 천하대장군.④ 퇴촌면 우산리 지하여장군.⑤ 중부면 엄미리 지하여장군.⑥ 목현리 지하여장군.

공씨 할아버지는 88올림픽 때도 엄미리에서 깎은 장승을 선수촌에 세웠고, 김포공항에 엄미리 장승이 서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엄미리 장승은 한국 목장승의 대표로 인정돼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엄미리 어귀와 동네사람들이 매일 드나드는 길목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마주보고 서있다.

엄미리 사람들은 장승을 친숙하게 대하면서도 경외한다. 개인이 장승을 깎아 내다 파는 일이 없고, 마을 아이들도 장승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장승은 한국민속문화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문헌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유래를 알기 어렵다.

사찰이 거대한 소유지를 보유하고 있었을 때 그 경계를 표시하는 의미에서 세워졌다는 설도 있고 솟대나 선돌, 서낭당과 같이 한민족의 토착신앙이라는 설도 있다. 광주 장승의 유래도 마찬가지지만, 공씨 할아버지는 윗대로부터 전해 들은 유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인조왕 때 중국놈들이 남한산까지 내려와 항복한 장군들 다 죽이고 나중에 염병까지 돌아서 동네사람들이 다 죽어나갔대. 노인들이 무속인한테 가서 살 대책을 물었더니 장승을 깎아서 마을 입구에 세우고 산신제를 지내면 낫는다고 해서 그렇게 하니까 정말 환자들이 나았다는거야. 그게 낫는 병이 아닌데. 그게 시작이었으니까 벌써 한참 됐지. 그 뒤로는 전쟁이 나도 이 마을에서는 다친 사람도 없고 집 한 채도 타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병자호란이후 시작된 산신제와 장승제는 일제시대 순사들의 핍박에도, 전쟁중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음력 2월 초에 산신제와 장승제가 열렸다. 한겨울을 피하되, 경칩이 되기 전 날을 잡는 것은 부정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개구리나 뱀이 돌아다니지 않을 때 하는 거야. 아무것도 없을 때. 산신제가 열릴 때는 사람들도 행동을 조심하고 출입도 삼가하지."

제일이 잡히면 산에서 오리나무를 골라 베어온다. 아름드리 나무에 장정 두서넛이 붙어서 하루종일, 혹은 이틀씩 깎아낸다. 만드는 방법이 따로 없이 장승을 앞에 두고, 새로 베어온 나무에 본을 그려서 옛것과 똑같이 깎는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낫을 이용해 나무껍질을 벗기고, 사모와 입이 될 부분을 톱과 도끼로 잘라낸다.

어느 정도 형체가 완성되면 대패로 나무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다. 눈을 그리고 사모대에 격자무늬를 넣는다. 몸통에는 먹으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쓴다. 아랫부분에 서울 70리, 수원 70리, 이천 70리라고도 쓴다. 옛날 보부상이나 과거시험보러 가던 사람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던 것이다.

문화부_광주 엄미리 장승13
광주시 목현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입술에 붉은색을 칠한 천하대장군.

마지막으로 지매털풀로 수염을 달아 완성한다. 새로 깎아낸 장승은 가장 오래된 장승 자리에 세운다. 장승은 시간이 갈수록 키가 줄어든다. 밑동이 썩으면서 내려앉는 것이다. 장승의 키를 보면 언제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새 장승을 세우고 제를 지낸다. 제관이 잔을 올리고 삼배한다. 집사가 장승 밑동에 술을 부으면 제관이 다시 삼배한다. 제의를 모두 마치면 통북어를 새로 세운 솟대에 창호지로 묶어 단다. 참석한 사람들은 음복한 후 철상한다.

엄미리 장승의 제작방법은 기억과 경험으로 전승됐다. 외지에 나가서 살던 자식들도 장승제가 열리는 날이면 광주로 돌아온다. 장승과 전혀 상관 없이 살다가도 그날은 장승을 깎는다. "여기는 다 그냥 깎는거야. 집집마다 연장 없는 집이 없어. 낫이며 도끼며 끌이며. 그냥 잡으면 깎는거지."

그러나 세월이 피해가는 곳은 없고, 1988년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옛 길이 끊겼다. 서낭당과 장승이 있던 곳으로 도로가 났고, 사람들은 도로를 따라 도시로 떠났다. 장승이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도 희미해졌다.

"알지. 미신 그까짓거 뭐 대단하다고. 밝은 세월에 미신을 따라가려고 하냐고 하고, 애들도 반기지 않고 그래서 한 4~5년 장승제를 안했지. 산신제는 아주 안지내고."

요즘은 장승제를 2년에 한 번씩 한다. 장승제를 부활시킨 것은 김영윤 이장을 비롯한 마을 청년들이었다. "한동안 젊은 사람들 중에 나서서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안 하게 됐어요. 70~80 되신 어르신들이 하기에는 힘든 일이니까요. 그러나 마을의 자랑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고, 잊혀지는게 안타까워서 청년들이 다시 나선 거지요."

요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장승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평일에 하던 장승제를 음력 2월 첫번째 일요일에 연다. 장승을 만들 때 쓰는 연장도 전기톱이나 전기대패를 써서 제작 시간을 줄였다.

지난해 열린 장승제는 경기문화재단과 광주문화원, 엄미리 마을이 공동 주관해 마을 행사가 아닌, 광주시 행사로 치러졌다. 학계나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문화원 관계자는 "엄미리 장승제는 수도권에서 원형이 그대로 살아있는 민속문화로 장승의 모양이나 장승제 진행 방법 등 문화적 가치가 매우 커 그동안 학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며 "잘 전승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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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사진 =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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