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바른 생각과 판단을 위하여

윤진현

발행일 2016-09-0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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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정보를 제한하여
속임수 쓰는게 쉬운일 아니건만
거짓 정보·본질 호도 책략 여전
많은 방송·온라인 통한 말 홍수로
신중해야 할 요즘 더 각박해지고
불신풍조로 '깨어있는 사고'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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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증삼살인(曾參殺人)'이니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니 하는 말이 있다. 전자는 어질고 효성 깊기로 유명하던 증자(曾子)와 이름이 같은 증삼이란 자가 살인을 했는데, 사람들이 세 번이나 연속해서 증자의 어머니에게 아들이 살인했다고 전하니 처음에는 믿지 않던 증자의 어머니까지도 결국은 아들을 의심하고 베틀에서 내려와 숨었다는 내용이고 후자는 세 사람이 시장통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 없건만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연속하여 전하니 이치를 따져 믿지 않던 사람도 결국은 믿게 되었다는 말이다. 틀린 말도, 헛소문도 계속되면 믿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긴 '반복'만큼 힘센 것이 있으랴. 일상적으로만 보아도 듣기 싫게 반복되는 말씀을 '잔소리'라고 하여 저마다 질색이지만 생각해보면 '잔소리'는 결국 습관이 되고 규칙을 만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선악 시비, 말로 결정되는 판단이야 말할 것도 없다. 세 번이 아니라 30번, 300번도 불사하며 같은 소리를 방출하는 대상을 앞에 놓고 그 생각을 거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고사성어가 실린 '전국책(戰國策)'이란 책이다. 전한(前漢)시대의 학자 유향(劉向)이 기원전 6년경에 편찬한 책으로 전국시대에 대륙을 누비며 세 치 혀로 세상을 움직이던 소진(蘇秦), 장의(張儀) 등 대단했던 책사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외교관의 변설과 권모술수를 기록한 것이다. '전국시대'란 중국에서 진(秦)나라, 초(楚)나라, 위(魏)나라 등 일곱 제후국이 서로 패권을 다투던 시대이니 이제는 많은 세력이 서로 주도권을 잡고자 다투는 시기를 전국시대라 칭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주무르던 이들 외교관을 제자백가의 일원으로 삼아 종횡가(縱橫家)라고도 하니 '합종연횡(合從連橫)'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전국책'이란 전국시대의 책략이란 뜻이다. 여론을 조작하고 반복되는 정보로 사람을 속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외교술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난세의 유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상이 바뀌어 예전처럼 정보를 제한하여 속임수를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건만 거짓 정보의 반복, 은밀한 재정의 따위를 통해서 본질을 호도하는 책략은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심지어 국가 간 책략에 활용되던 것이 이제는 사회 일반으로 광범위하게 확장된 듯하다. 예전보다 계책을 관철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니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듯도 하다. 그러나 거짓에 기반한 책략은 효용을 따지기 전에 옳지 못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행태가 쓸모가 있는 동안에는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어찌하면 그 쓸모를 줄이고 없앨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 같은 현란한 말의 영역에서 타인의 생각을 조종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 수월한 것은 그 단어들이 추상적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들은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충분히 역지사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은 자신의 가치 기준을 정립하고 여기에 판단해야 할 사건을 대입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고 해보자.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구분될 것이다. 두 번째는 각기 다른 설명과 입장을 따져보는 것이다. 이현령비현령의 합리화를 듣자는 뜻이 아니다. 드라마 속에서 각기 다른 인물이 다른 행동을 하는 것처럼 상황과 행동을 구분해보는 것이다. 셋째는 성급하게 서둘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쉽게 판단해도 될 만큼 단순한 일은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진위시비를 가리는데 신중하고 바른 판단이란 늘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더 신중할 때가 있다면 방송도 많아지고 갖은 온라인 매체까지 늘어나 말이 홍수를 이루는 이때, 사람 사이가 각박해지고 불신이 아예 풍조가 된 요즘이 아닐까 싶다. 깨어있는 사고가 간절한 때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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