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 유승민 IOC 선수위원

탁구신동에서 행정가로… 스포츠 외교 향한 '힘찬 핑퐁'

이원근·신창윤 기자

발행일 2016-09-07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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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IOC위원 인터뷰 공감17

'경인일보 체육꿈나무 대상 출신' 중학교 3학년때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세계평화 영감… 선수위원 출마후 '발에 물집 잡힐때까지' 대화하려 노력
IOC-대한체육회 연결해 한국역할 확립·은퇴선수들에 새분야 제시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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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은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탁구 소질을 보이며 국내는 물론 세계를 주름잡았고, 은퇴 후에도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런 그가 이제는 전 세계 스포츠인을 대표하는 IOC 선수위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경기도 출신인 그가 어엿한 한 나라의 스포츠 행정가로 성장한 것이다.

6일 오전 용인시 삼성휴먼센터 내 탁구체육관. 이곳에서 유승민 위원을 만났다. 그는 요즘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도 기자들의 인터뷰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반갑게 맞아주었다.

IOC 선수위원 당선 소감을 묻자 웃으며 얘기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마냥 좋았는데, 이번에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몰려옵니다. 어떻게 인정받고 평가를 받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유 위원의 말대로 그는 앞으로 8년 동안 선수위원으로 활동한다. 게다가 IOC 선수위원은 동·하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등 IOC 위원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니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하다. 그래서 당시 선수위원에 뽑힌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 위원은 자신감이 넘쳤다고 한다.

"저는 당선될 가능성에 대해 자신 있었습니다. 안과 밖의 느낌은 달랐습니다. 당선될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수들이 격려의 말을 전했고, 친근감 있게 다가와 주었습니다. 운동하는 것을 봤을 때 '뽑아주고 싶다' 등 격려를 들었을 때 자신감이 생겼고 동기부여도 됐습니다."

선수위원에 뽑히기 위해 유 위원이 내세운 전략은 무엇일까. 유 위원은 우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발에 물집이 잡히기까지 했다. "무조건 오랫동안 선수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략보다는 시간 제한이 없는 만큼 나를 알리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움직였습니다."

유 위원이 선수위원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무얼까. 그는 문대성 위원을 모델로 삼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문대성 선수위원과 방을 같이 쓰면서 선수위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게 됐습니다. 또 저는 피스엔 스포츠컵(분쟁국가들끼리 참가하는 대회)에서 복식 조를 꾸려 친선경기를 했는데 당시 저랑 북한 선수가 1등을 했습니다. 스포츠라는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해 영감을 주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승민 IOC위원 인터뷰 공감8

 

이번에 선수위원은 모두 4명이 뽑혔다. 유 위원은 펜싱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됐고 수영 다니엘 지우르타(헝가리), 육상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가 나란히 당선됐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신설된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뽑는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IOC 위원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만 남아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건강 악화로 IOC 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다. 또 문대성 위원은 리우 올림픽을 끝으로 임기가 끝났다. 따라서 유 위원이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IOC 위원 역할을 한다.

"아직 배우는 단계라 앞으로의 계획을 세부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IOC에서 11월 첫 미팅이 있는데, 그때 방향이 잡힐 것 같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앞두고 있어 책임감이 크지만 많은 분의 조언을 통해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김운용 대한체육회 고문이 IOC에서 물러난 뒤 스포츠 외교력이 많이 약화됐다. 게다가 체육 단체 통합으로 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태다. 하지만 유 위원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제 주변에는 많은 선수위원이 있습니다. 그들과 많이 가까워졌고 채팅방도 개설할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외교적인 부분에선 소통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IOC와 대한체육회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유 위원의 지난 선수 시절은 어땠을까. 부천 내동중 3학년 때인 1997년 탁구 최연소(15세) 나이로 국가대표가 되면서 '탁구 신동'으로 불린 유 위원은 제25회 전국소년체전에서 맹위를 떨치며 경인일보사가 제정한 '제4회 체육 꿈나무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학교 때 우승한 것은 생각이 납니다. 특히 경인일보사에서 마련해준 체육 꿈나무 대상은 많은 꿈나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현재까지 이 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선수시절 일화에 대해 유 위원은 독일에서의 생활을 기억했다.

"은퇴 2년 전 한국과 유럽을 오가면서 유럽리그에서 활동하고 독일에서 생활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런던 올림픽 끝나고 독일에서의 시스템을 많이 배웠습니다. 선진국 시스템과 관중문화, 생활문화를 많이 느꼈습니다."

유 위원이 독일을 부러워한 것은 탁구가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독일은 생활체육도 클럽리그가 있는데, 1~3부까지 프로라면 4~6부는 동호인들이 수준별로 등록돼 있다. 아마추어들도 주말에 리그하고 경기가 없으면 프로 경기를 관람하는데 단일 대회로 무수히 많은 경기를 치르는 우리나라와 비교된다.

은퇴 선수들에 대해서도 유 위원은 자신의 철학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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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하면서 '왜 너를 뽑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고 그들은 올림피언입니다. 선수로서 20년 넘게 생활했고 지도자 경험도 있습니다. 은퇴했을 때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선수들에게 새로운 분야를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통합체육회 출범에 대해서도 소신있게 설명했다.

"솔직히 체육회 이사 선임도 1주일 전이고 선수위원장도 1주일 전입니다. 통합 과정에서 진통은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장점이 더 많습니다. 생활체육 있기에 엘리트가 있고, 엘리트가 있기에 생활체육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독일의 스포츠 정책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제도를 개선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통합체육회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화제를 바꿔 그는 평소 어떻게 지낼까. 유 위원은 가족이 먼저라고 한다.

"아이들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어려운 일도 생각나지 않고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또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만난 분들도 계속 교류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분들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운동하는 선수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습니다."

유 위원은 후배 선수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후배들을 리우 올림픽 현장에서 봤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승자를 인정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모습은 더욱 멋졌습니다. 일각에선 금메달이 부족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저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IOC 폐막 총회 때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우리나라 체조 선수 셀카 한 장이 스포츠의 힘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올림픽 정신에 다가가려는 우리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웠습니다."

유 위원은 IOC 선수위원이 끝나는 8년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선수 유승민'에서 '행정가 유승민'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분명 따뜻한 사람이고 세상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할 듯싶다.

대담·정리/신창윤 체육부장·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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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1982년 8월 5일 출생
-오정초-내동중-동남종고-경기대-경기대 사회체육학과 대학원 졸업
-주요 경력
▲2016.08~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2014.07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팀 코치, 삼성생명 탁구단 코치, 삼성생명 탁구단 ▲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8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7 제18회 아시아 탁구선수권대회 남자 국가대표 ▲2006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4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2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0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수상내역
▲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은메달 ▲2011 카타르 피스 앤 스포츠 탁구 컵 남자 복식 우승 ▲2008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동메달, 국제탁구연맹 칠레 오픈 남자 단식 우승 ▲2007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동메달, 쿠웨이트 오픈 탁구대회 남자 복식 우승 ▲2006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단식 동메달,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단체전 은메달 ▲2005 도요타컵 국제탁구대회 남자 단식 우승 ▲2004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 폭스바겐 코리아오픈 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3위 ▲2002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복식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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