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부동산, '그들만의 리그'로 내버려 두자!

김방희

발행일 2016-09-08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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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왜곡현상 근본적 이유는
허망한 시기·질투심에서 비롯
형편 안돼도 돈 될 것이란 환상에
무리해서 집을 산다고 해도
'더 비싼 집' 장만 부담 때문에
마음 편하고 행복할 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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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30대 때 대학동창들 사이에서는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무리해서라도 서울 강남으로 이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강남과 비강남 지역 거주자 사이에는 사회 계층 격차가 있었다.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란 믿음마저 있었다.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강남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불안감도 팽배했다. 그렇게 친구들은 일찌감치 '강남 엑소더스(exodus)'를 단행했다. 강남행을 선택하지 않는 나는 두고두고 놀림감이 됐다.

20여년이 흐른 후 친구들과 손익 계산을 해본 적이 있다. 집이 한 채인 채로 강남 간 친구들이라고 특별히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 더 비싼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처지는 비슷했다. 물론 재산 평가액에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숫자에 너무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대신 난 느긋한 출퇴근 길 같은 삶의 질을 더 누렸다.

우리 부동산 시장은 왜 이토록 왜곡됐을까? 한국인의 유별난 집에 대한 집착이야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던 바다. 그와 함께 개발과 성장 우선의 정부 정책을 꼽는 이들이 많다. 2014년 8월 갓 들어선 최경환 경제팀이 부동산을 통해 좋지 않은 경기를 살리겠다고 나선 것도 오랜 악습의 결과다. 그 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는 200조원 이상 증가했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여러 규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하다. 이번에는 장기 침체나 대폭 하락이 아니라, 과거와 같은 거품 형성에 대한 불안감이 차이라면 차이다.

부동산 금융 규제완화 이후 정부의 정책 신호가 혼선을 빚는 것도 문제다.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집단대출을 줄이기 위해 지방 택지공급 물량을 줄인다는 정책만 해도 그렇다. 정부의 규제 취지와 달리, 시장에서는 빨리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노란 불'에 해당하는 교통 신호다. 교통신호 체계에서 노란 불은 건너지 말라는 신호다. 하지만 대부분의 차량과 사람은 교차로와 횡단보도에서 더욱 속도를 낸다.

근본적인 부동산 왜곡 현상의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우리의 시기와 질투심이다. 이는 부동산에서 투기적 수요로 나타난다. 형편이 안 되면서도 돈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좇는다. 남한테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무리를 거듭한다. 결국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심리가 경제나 금융 환경과는 완전히 엇박자를 내는 부동산 시장을 만들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자칫 분양 열기가 타오를 처지에 놓여 있다. 과거에는 마치 동심원을 그리며 파문이 일듯, 이런 열기가 지역적으로는 강남, 서울, 수도권으로 확산됐다. 대상으로도 재건축, 분양 등 부동산 시장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지금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부동산 시장이 호조를 띨 환경은 아니다. 저성장 경제가 지속되고 있고 금융 환경은 불안하기만 하다. 향후 부동산 공급도 지나치리만치 높아질 예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 일부 지역은 역전세난에 시달리고 지방은 20주째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요는 투기적 수요가 과거처럼 폭발하느냐 여부가 향후 부동산 시장의 향배를 결정지을 것이다.

경제적 이해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부동산에 대한 우리의 허망한 시기와 질투심을 내려놓자. 실상 무리해서 집을 산다고 해도 더 비싼 집을 구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편안하고 행복할 틈이 없다. 집 한 채만을 갈구하는 보통 사람이 투기적 수요에 가세하지 않으면 시장이 왜곡될 일은 없다.

물론 돈이 많아 집을 몇 채씩 사고파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맨해튼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에도 천문학적인 고가 주택을 사고파는 이들이 있다. 그런 부동산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로 남겨놓자. 그들로 하여금 엄청난 이득뿐만 아니라 그에 합당한 위험도 감당하게 하자. 만일 우리가 덩달아 그들을 쫓지만 않는다면 조금 더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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