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길의 장터사람들·10] 용인장터 농산물 장수 최기정 할머니

이야기 넘실대는 '할매표 신토불이 장보따리'

경인일보

발행일 2016-09-12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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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길의장터사람들 경인일보 연

새벽밥 먹고 짐 이고 지고 걷고
수십년 믿음 거래로 6남매 키워
상추·열무… 제철농산물만 수확
손주용돈 줄 생각에 고단함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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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고희의 나이로 운전면허시험에 7전 8기의 각오로 응시해 합격한 최기정(80) 할머니. 젊은 사람들도 쉽게 취득할 수 없는 운전면허에서 필기시험에 두 번 떨어진 뒤 세 번째에 2전 3기로 합격하고 실기시험에서도 당당하게 합격해 면허증을 취득한 멋쟁이 할머니다.

실향민인 남편과 중매로 만나 결혼해 슬하에 1남 5녀를 낳고 살았다. 농사를 지으며 밥 먹고 살아가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생필품을 사거나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농산물을 장터에 들고 나가 팔아야만 했다.

옛날에 시골 장터로 장사하러 나갈 때에는 장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2시간은 걸어야 했다. 새벽밥을 지어먹고 장날마다 보따리 짐을 머리에 이고 지고 끌고 다니며 장터에 앉아 팔았다. 그렇게 해서 6남매를 먹이고 키우고 가르쳐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 모두가 원하는 일에 종사하며 떳떳하게 잘 산다고 한다.

최 씨는 "교육계에 근무하고 있는 막내딸이 엄마에게도 제일 잘한다"며 막내딸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 장날에 나와 있으면 '전화도 자주 해주고 엄마 걱정을 많이 해 준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남편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남편이 십 원짜리 하나도 아끼고 안 쓰며 절약해 알뜰하게 자식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준 덕분으로 이만큼이나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최 씨 할머니는 용인장터에서만 장사를 하고 장날(5일, 10일장)이 아닌 날에는 농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여름에는 상추, 열무, 시금치 등이 잘 팔린다. 계절마다 나오는 농산물을 제철에 수확해서 장날에 들고 나와 파니 신토불이 농산물이다.

오랜 세월 장날마다 나와 앉아 있으니 말동무 할 단골손님도 많고 소식도 주고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터에서 버는 돈은 본인의 용돈으로 쓰고 손자 손녀들에게도 용돈을 주는 재미로 피곤함도 모르고 산다고 한다.

격동기를 살아오신 80대 이후의 어르신들은 역사의 증인들이다. 그들이 살아온 시대는 언제나 삶에 피곤함이 함께 했다. 그러나 '자식'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는 모든 걸 희생하고 살았고 싫으나 좋으나 그들의 장 보따리 안에는 자식뿐이었다.

최기정 할머니의 마음속 한구석에도 늘 '자식'이 품어져 있다. 그래서 시골 장터에 가면 어머니 품속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듯하다.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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