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실미도'와 '인천상륙작전' 주인공을 바꿔보자

임성훈

발행일 2016-09-1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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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전에서 잔뜩 겁먹은 얼굴의 민간인 입장
월미도 실향민 할머니의 고향 찾겠다는 절규
그들이 주연인 영화가 개봉하는 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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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내가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의 내 몸을 생각했다. 나는 남방셔츠 주머니에 꽂았던 꽃을 꺼내 버렸다. '건방지게 낫살이나 처먹고 이런 것을 꽂고 다니니까 죽었지'하고 비웃을 것 같았다."

'장마 때 소나기 퍼붓듯 쏴~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글쓴이가 묘사한 실미도 부대원과 진압군 간의 교전 상황이다. 치열한 총격전을 묘사할 때 으레 쓰는 '콩 볶는 듯한'이란 표현보다 더 살벌한 상황이 그려진다. 어이없게도 이 같은 극한상황 속에서 그는 주머니에 꽂혀있는 꽃을 떠올린다. 이어 꽃을 버리는, 다시 말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패턴을 취함으로써 인간 심리의 이면을 보여준다.-

10년전으로 기억한다. '인천인물 100인'이라는 기획물을 연재할 당시, 초대 인천문화원장을 지낸 故 우문국(禹文國) 화백의 가족을 취재차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고인의 딸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문국 화백이 실미도 사건 당시, 실미도 부대원들이 탈취한 버스에 타고 있었으며 그때의 경험을 글로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어디에 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딸을 종용(?)해 집안을 샅샅이 뒤진 끝에 빛바랜 종이묶음을 발견했다. '실미도 난동자와의 동승기'(이하 동승기)란 제목을 단, 200자 원고지 46매 분량의 문서였다.

당시는 영화 실미도가 우리나라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지 2년여가 지난 후였다. 영화 흥행과 맞물려 실미도 사건에 연루됐던 관계자들의 증언이 나오긴 했지만, 승객 당사자의 경험담을 담은 문서는 동승기가 처음이었다.

서두에 소개한 글은 바로 동승기의 한 대목이다. 이처럼 동승기는 총격전이 오가며 생사의 기로를 헤맸던 긴박했던 상황을 사실감 있는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동승기를 접하고 난 뒤 비디오를 통해 다시 본 '실미도'는 달랐다. 무엇보다 처음 영화를 볼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우문국 화백과 같은 승객들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들은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잔뜩 겁먹은 얼굴로 영상의 한 컷에 머무는 게 그들 역할의 전부였다. 다시 영화를 보면서 민간인의 입장에서 실미도 사건을 다룬 영화를 제작한다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었던 기억이 새롭다.

7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확장판이 재개봉했다는 소식이다. 인천상륙작전과 관련해서도 아련한 기억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의 월미도 폭격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월미도 실향민들이 고향을 찾겠다며 인천시청에서 농성 할 때다. 시장실 진입을 저지당한 한 할머니의 절규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시장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말하려 하는데 왜 순사들이 막는거여!"

'실미도'에서 그랬듯이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없다. 물론 제한된 러닝타임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주인공을 바꿔보자고.

이념 문제는 논외로 하고, 영화 '실미도'와 '인천상륙작전'은 묻혀 있던 우리의 역사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본 후속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미도 사건 당시, 옥련이발소 앞에서 놀다 숨진 5살 어린이, 버스에서 숨진 스승의 두 아이를 거의 매일 돌봐주다가 몇 년후 진짜로 그 아이들의 새엄마가 된 제자, 청원경찰을 '순사'로 알고 있는 한 맺힌 할머니….

그들이 주연인 영화가 개봉하는 날을 기다려 본다.

/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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