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경기, 문화원형으로 읽다·5] 동두천 소요산 자재암과 원효대사 이야기

찰나의 깨달음은, 때론 덧없다
억겁의 번뇌와 싸운 고승의 터전

권준우 기자

발행일 2016-09-21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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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자락을 따라 우뚝 솟은 기암인 독성암(獨聖巖)이 골짜기 속에 파묻힌 자재암을 굽어 내려보고 있다. 아래로는 천연암굴인 나한전이, 오른쪽으로는 보살의 시험에 번뇌를 느낀 원효대사가 몸을 담갔다는 옥류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우물처럼 깊게 팬 협곡에서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높이 솟은 독성암, 고즈넉한 자재암과 어우러져 시원한 경치를 뽐낸다.

'일체유심조' 유학길 포기 소요산에 자리 '자재암 설화' 전해져
휴식처였던 원효폭포·속세인연 끊는다는 속리교… 곳곳에 흔적
동두천문화원, 지난해부터 지역 명물 108계단 '108문화제' 행사
청량폭포에서 시작된 다천약수 '다도의 원류' 다양한 연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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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와 해골물 일화. 남루한 기연을 통해 돈오의 경지를 연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에피소드로 시공과 불문(佛門)을 초월해 인구에 회자돼 왔다. 만일 원효가 해골물의 기연 없이 당나라 유학 여정을 예정대로 마쳤다면 그의 역사적 위치는 어디에 머물지 궁금하다.

다만 그가 유학을 강행했다면 소요산에 깃든 원효 스토리 대부분도 유실됐으리라 추측해보니 다행이지 싶다.신라 진덕여왕 시대인 660년, 그는 더 큰 배움을 위해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던 중 비바람이 몰아쳤고, 험로에 놓인 그들은 근처 동굴로 몸을 피했다가 목마름에 동굴 속 물로 목을 축였다.

그러나 잠에서 깬 원효는 그토록 달게 마신 물이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주체할 수 없는 매스꺼움에 구역질을 하던 원효는 그 순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로부터 1천여 년이 흘렀다. 우리는 여전히 원효의 깨달음을 높이 사며 현인의 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과연 이게 다일까. '깨달음'은 때론 무척 덧없다. 아무리 명백한 진리여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보다 그 깨달음을 일생 동안 지켜나가는 것이 더 어렵다.

이는 원효대사도 마찬가지였다. 불가에 귀의한 신분으로 요석공주와 혼인을 올린 것이 그가 깨달은 일체유심조의 결단인지, 단지 번민에 사로잡힌 결과인지는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다만 깨달음을 종착지로 삼은 게 아니라 끊임없이 번민에 시달려온 그의 일생을 되짚어 봤을 때, 그것 역시 번민과 깨달음이 오가는 한 과정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원효대사가 현인인 이유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깨달음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번뇌와 싸워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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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문(解脫門). 백팔계단 가장 윗부분에 자리하며 계단 하나하나에 담긴 번뇌를 이겨내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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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元曉臺). 해탈문을 넘어 위치한 천연 암석으로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위해 정진했던 자리다. 원효폭포를 시작으로 산줄기와 정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원효대사가 유학길을 포기하고 동두천 소요산에 자리를 잡았을 때의 일이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토막에 정좌하고 명상을 하던 원효대사의 귀에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정제됐던 마음에 한순간 일렁임이 생긴 그때 한 여인이 다급하게 토막의 문을 두드렸다.

비바람을 피하게 해 달라는 여인의 간청에 그는 갈등을 느꼈지만, 폭풍우에 여인을 그냥 둘 수 없어 결국 안으로 들였다.

화톳불에 비친 여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여인이 원효에게 비에 언 자신의 몸을 녹여달라 부탁했다. 그도 역시 사람, 마음 한 편에 색정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해골물의 교훈을 되뇌며 여자를 목석으로 생각하려 마음먹었지만, 날이 밝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던 해골물과 달리 눈앞의 여인은 실재했다.

굳어졌다 생각한 마음은 자그만 바람에도 흩어져버릴 정도로 쪼개지고 파여갔다. 결국 원효는 고개를 저으며 여인을 내버려둔 채 비바람 속으로 뛰쳐나왔다. 번뇌를 던지듯 옷을 벗고 옥류폭포에 몸을 담갔다. 그러나 여인은 곧 폭포까지 따라왔다.

참다못한 원효는 여인에게 소리쳤다. "너는 대관절 누구인데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 거냐?" 그러자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스님을 유혹하다뇨. 스님이 저를 색안으로 보시면서…."

그 순간 원효의 머리 속에 깨달음의 경종이 다시 한 번 울렸다. 여인을 목석이라고 여기겠다는 일체유심조의 도리엔 한계가 있었다. 사물을 보며 새로이 생겨나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자 원효는 캄캄했던 주변의 사물이 제 빛을 찾듯 빛나는 것을 느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여인은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어느새 금빛 찬란한 후광을 띤 보살로 변해 폭포를 거슬러 사라졌다.

원효대사는 그 곳에 암자를 세웠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뜻대로 한 곳이라 해 절 이름을 자재암이라 했다. 이것이 소요산 자재암에 얽힌 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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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암 삼성각(三聖閣). 산신(山神)과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당우(불교에서 말하는 건물의 개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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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교(俗離橋). 원효폭포 오른쪽에 위치하며 자재암으로 이어지는 관문이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자재암 일대에는 원효대사가 번뇌와 싸워온 흔적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다. 소요산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나무와 어우러진 웅장한 일주문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올라가면 원효대사가 수도 중 내려와 휴식을 취했다고 알려진 원효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다.

폭포 옆 석굴에는 작은 삼존불이 자리해 사람들의 염원을 묵묵히 듣고 있다. 원효폭포 오른쪽에는 자재암으로 이어지는 다리인 속리교(俗離橋)가 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어낸다는 의미다. 폭포수를 건너게끔 조성된 다리는 조용한 산중 속 서로에게 건네는 불자들의 합장과 어우러져 경건함을 자아낸다.

다리를 건너면 소요산의 명물인 108계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계단을 오르며 백팔번뇌를 하나하나 내려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두천문화원과 자재암은 지난해부터 원효대사의 뜻을 이어 매해 신정으로부터 108일이 되는 날을 맞춰 '108 문화제'를 열고 있다.

108개의 계단을 하나씩 오르며 각각의 의미를 되뇌고 번민을 떨친다는 의미다. 108계단을 오르면 윤회의 가르침을 형상화 하고 있는 해탈문이 나온다. 연꽃과 만다라, 법륜 등으로 장식된 문에는 종이 매달려 있어 계단을 오른 이가 종을 울리며 깨달음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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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팔계단 입구. 해탈문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며 각 계단마다 불교에서 말하는 백팔번뇌의 의미가 담겨있다.

동두천문화원 박용철 사무국장은 "108개의 계단을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 분 남짓이지만 각각의 의미를 새기며 걷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불교의 교리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어우러진 산세를 느끼며 걷는 길은 누구에게나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해탈문을 지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원효대사가 정좌하고 마음을 다스렸다는 원효대다. 평평한 암석 위에 자세를 고쳐잡고 앉으면 폭포를 아래에 둔 탁 트인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왜 원효대사가 번뇌를 다스릴 수행의 장소로 이곳을 택했는지 알만 하다.

산길을 따라 좀 더 오르면 절로 이어지는 마지막 관문인 극락교(極樂橋)와 함께 산세에 파묻힌 듯한 자재암의 안락한 자태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재암의 규모는 크지 않다. 대웅전과 삼성각이 있고, 그나마 특이하다면 천연 동굴 속에 마련된 사찰인 나한전이 있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절의 형태는 원효대사의 깨달음과 묘하게 닮았다. 자연과 다른 듯 묘하게 섞여 있고 인위적인 향 냄새보다는 바로 옆 옥류폭포에서 실려오는 풀과 바람의 향이 절을 메우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자재암과 얽힌 원효대사의 생애는 깨달음의 확인이 아닌 번뇌와 싸운 역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재암을 찾는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깨달음의 기회를 발견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쌓을 수 있는 마음의 정진을 찾으러 오는 것"이라며 "마음 속에 고민과 갈등이 있는 사람이 그에 대한 해결을 꾀한다기 보다는 안식을 찾기 위해 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효대사와 자재암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지만 자재암 청량폭포를 시작으로 흐르는 다천약수가 다도(茶道)의 원류라는 사실은 아직 일부 문인들 외엔 언급되거나 문화원형으로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글 =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사진 =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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