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사람의 죽음

박영렬

발행일 2016-09-21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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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보다 무겁고 깃털보다 가벼운 죽는 동기의 가치
수사대상자 죽음으로 억울함 알려 결백 주장하기도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생 마감' 좀 더 신중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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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
사람의 죽음에는 그 원인에 따라 자연사와 사고사가 있고, 자살과 타살이 있다. 현행법상 자살행위는 범죄가 아니므로 자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치더라도 처벌되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으로 하여금 자살을 하게하거나(자살교사) 타인의 자살을 도와준 행위(자살방조)는 처벌된다. 자살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울증이나 생활고, 직장인들의 경우 업무스트레스, 수험생들의 경우 정신적 압박등이 주된 원인으로 거론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35개국중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하니 아직도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경제발전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중국 전한시대 무제때 역사가이자 '사기'의 저자인 태사공 사마천은 사람의 죽음에 대해 '사람은 한번 죽게 되어있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重於泰山), 어떤 죽음은 기러기의 깃털보다 가벼운 데(輕於鴻毛), 그 차이는 죽음으로써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 동기에 따라 그 가치를 다르게 평가한 것이다.

역사적인 사례를 본다면 구한말 예조·병조 판서를 역임한 민영환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계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제침략에 격렬히 항거하면서 그 부당성을 널리 알렸다. 경비가 삼엄한 하얼빈 역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행위도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위대한 거사였다.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음은 물론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살려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에 길이 빛날 쾌거로 평가된다.

중국 초나라 회왕의 신임을 받던 굴원은 급속히 팽창하는 진나라에 대한 대응책으로 합종설을 주장했다가 조정중신들과 뜻이 달라 실각한 후 우국충정에서 결국 멱라수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그때가 기원전 3세기경 5월 5일로 오늘날 단오절의 기원이 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위와같은 경우는 태사공이 말한 태산보다 더 중한 죽음을 선택한 예가 될 것이다.

태사공 자신도 흉노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투항했던 이릉장군을 옹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받아 궁형이라는 형벌을 받게 된다. 궁형은 거세하는 것으로 그 당시는 벼슬하던 사람이 궁형을 받으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하루에도 창자가 9번 뒤틀리고, 집안에 있으면 무언가를 잃은 듯이 멍하고, 밖에 나가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며, 치욕을 생각할 때 마다 등에서 땀이 흘러 옷깃을 적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태사공이 이런 치욕을 참으며 목숨을 부지한 이유는 오직 하나 선친 사마담으로부터 '사기'를 완성하라는 유언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결과 그는 불후의 명작 '사기'라는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만약 태사공이 궁형을 선고받았을 때 치욕을 참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였다면 그의 표현대로 그 죽음은 깃털보다도 가벼웠을 것이고 오늘날 사마천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요즈음 수사를 받는 도중 또는 수사기관의 소환을 앞두고 자살하였다는 뉴스가 가끔 들려온다.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죽음을 선택할 당시의 절박한 사정은 죽은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니 산 자가 그 죽음의 의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들 대부분은 죽음으로써 억울함을 세상에 알려 결백을 주장하거나, 본인 때문에 수사가 확대되고 범죄가 성립되는 연결고리를 끊으려고 했을 것이다. 어떠하든 그 죽음이 태산보다 무거운 것인지 기러기 깃털보다 가벼운 것인지는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 달려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태사공이 궁형이라는 치욕을 감수하면서도 죽음을 택하지 않은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생에 한번 밖에 없는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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