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창간특집

[공감 경인일보 70+1, 독자추천]동행취재 환경미화원 안양 '사박사박' 이명진씨

눈·비가 와도 '시민이 일어나기전 시작'… 행복한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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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에 가치를 느끼고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직업"이라고 말하는 이명진(42)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사고 위험에 복지여건 열악·사회적 인식도 여전히 척박
'출근길 쌓인 쓰레기 안보이게' 철칙 큰도로·주택가 누벼
일년 내내 괴롭히는 담배꽁초·가을에는 '낙엽과의 전쟁'
수십대 1 경쟁률 취업난 실감 "안정적인 직업이라 매력"


가끔이지만 그렇게 따뜻하게 저희를 바라봐 주는 시민들을 만날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자기 일에 가치를 느끼고,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일로 충분히 생계를 꾸릴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직업 아닐까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시민들이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다. 가로등 불빛이 가시지 않은 새벽 거리,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환경미화원들은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거리 청소에 나선다.



시민들이 출근 하기 전 청소를 끝내야 하는 업무 특성상 환경미화원은 새벽 6시 전에 일을 시작한다. 사고위험도 늘 상존한다. 휴게시설 등 복지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청소부에서 환경미화원으로 명칭이 바뀐지도 꽤 됐지만, 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척박하다.

시민들이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누구보다 먼저 아침을 깨우고 본인들이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환경미화원을 만나봤다.

지난 3일 먼동이 트려 할 무렵인 오전 5시 40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의 한 골목은 '사박사박' 환경미화원 이명진(42·안양)씨의 빗질 소리로 가득했다. 안양시 환경미화원의 정식 출근 시간은 6시지만, 8시까지 1차 가로 청소를 마무리하려고 30분 일찍 현장에 도착해 일을 시작했다.

이씨가 담당하는 구역은 안양종합운동장부터 비산중학교 근처까지 이르는 주택가다. 종합운동장 곁을 지나는 평촌대로라는 큰 도로와 빌라촌 사이사이로 잔가지처럼 뻗어 있는 작은 도로가 얽힌 구역이다.

이씨는 오전 8시까지 종합운동장 정문에서 인근 인라인롤러경기장까지 평촌대로를 따라 400m를 쓴 뒤에, 잠시 쉬었다가 오전 10시부터 정오 사이 주택가 골목골목 사이를 쓴다. 버스정류장을 찾는 출근길 시민들이 거리에 쌓인 쓰레기를 봐서는 안 된다는 게 이씨의 신념이다.

이씨는 "아무래도 출근하시는 분들이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밤새 버려진 병이나 캔 같은 걸 보면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그 전에 거리를 깨끗이 치워두면 저도 기분이 좋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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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하는 특성상 환경미화원들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일을 한다지만, 신호를 무시하고 새벽길을 달리는 차량을 볼 때면 이씨도 위협을 느낀다.

안전보건공단 통계에 따르면 매년 10여명의 환경미화원들이 사고로 숨지고 있으며 이들 절반은 도로교통사고로 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환경미화원 업무에 대한 각 지자체의 규정에는 '시민이 일어나기 전인 새벽에 업무를 시작한다'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이씨 역시 차로를 따라 조성된 도로변 주차구역으로 내려가 청소 업무를 계속했다. 차량 바퀴 주변, 트렁크와 보닛 위까지 할 것 없이 밤새 누군가 버린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쓰레기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담배꽁초다. 흡연구역이 따로 지정돼 있지 않은 주택가는 흡연자들이 버린 담배꽁초로 몸살을 앓는다.

일 년 내내 환경미화원을 괴롭히는 담배꽁초를 제외하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환경미화원을 괴롭히는 쓰레기의 종류도 바뀐다.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 중 이씨가 싫어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바로 '낙엽' 때문이다.

평소 2시간 근무에 50ℓ짜리 대형봉투 4~5개 분량의 쓰레기가 배출되지만, 가을이면 10개를 넘게 사용하는 날이 많다. 야외활동이 많은 여름은 과음한 시민들이 남겨놓은 흔적도 골칫거리다. 주택가의 취객 흔적은 어디서 흙이라도 구해와 덮고 치울 수 있지만, 번화가에선 빗자루로 쓸어담는 것 외엔 마땅한 처리 방법도 없다.

겨울이면 수북이 쌓인 눈 아래 있을지도 모를 뾰족한 물건들로 인해 위험을 느낀다. 두꺼운 등산화를 신고 일을 해도 종종 날카로운 물건에 찔리는 경험을 피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어느 계절이나 애로사항이 없는 때가 없죠. 하지만 그것도 다 환경미화원이 감내해야 하는 업무인걸요"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큰 도로변을 따라 비질을 하다 보면 쓰레기 수거 차량과 여러 번 만난다. 가로수·가로등 아래 수북이 쌓인 쓰레기봉투를 차량이 거둬 가면, 남은 자잘한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건 이씨의 몫이다.

집 앞에 내놓은 소파며 탁자 같은 무단투기물에 '배출자가 처리하라'는 내용의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그의 일이다. 작은 나무판자 같은 것은 등산화로 밟아 잘게 부순 뒤 이씨가 스스로 수거한다.

2시간이 넘게 청소 업무를 하는 동안 거리를 한번 쳐다보고, 쓰레기를 쓸어 담고, 봉투를 묶어 쌓아두고 하는 동작을 수십 번 넘게 반복했다.

8년 차 환경미화원인 이씨는 미화원이 되기 전, 개인사업과 레미콘 기사 일을 했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주거도 일정치 않아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지 못했고,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 안정적인 직업으로 전직을 결심했고,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환경미화원이다.

"처음에는 환경미화원 일에 대해 큰 사명감은 없었어요. 그저 꼬박꼬박 밀리지 않고 월급이 나오고, 정년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런 생각뿐이었죠"라고 이씨는 말했다. 채용시험 당시 "미화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이씨는 "안정적인 직업이 매력"이라고 답했다.

환경미화원이 되기 위해선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체력 테스트와 면접시험을 거쳐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어느 구청의 미화원 시험에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석·박사 고학력자도 지원했다는 뉴스가 나오곤 하지만, '취업난'의 방증으로 결론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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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이명진씨가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이씨는 '직업 안정성'과 '생각보다 높은 연봉'이 환경미화원의 장점은 맞지만, 그것만 바라보고 환경미화원 일을 선택해선 업무를 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매일 5시에 출근하려면 적어도 전날 10시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비 오는 날엔 군대 훈련도 안 한다지만, 미화원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을 해야 해 체력적인 부담도 커 다부진 의지가 아니고선 일을 잘 해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금 이씨가 담당한 주택가 구역은 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비질하는 이씨에게 요구르트를 건네는 어르신도 많고 출근길에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본 시민이 시청 홈페이지에 직접 칭찬하는 글을 남기기도 한다.

이씨는 "가끔이지만 그렇게 따뜻하게 저희를 바라봐 주는 시민들을 만날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 누군가가 자신이 하는 일을 가치 있게 여겨준다는 것, 그것이 힘이 된다"라고 했다.

물론 시민들을 만나며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벽에 청소를 하다 주운 지갑이나 휴대전화를 돌려주려 연락하면 "바쁘니 직장까지 택배로 보내달라"거나 "지갑 안에 있는 것들이 사라졌는데 혹시 손 댔냐"며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미화원들은 그럴 때면 과거에 비해 삭막한 세상이 된 것 같다고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씨의 꿈은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아파트가 아니라 개인 주택이었으면 좋고, 마당이 딸린 집이면 더할 나위 없다.

오전 10시 무렵 마지막 비질을 한 이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자기 일에 가치를 느끼고,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일로 충분히 생계를 꾸릴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직업 아닐까요"라고 되물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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