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카르발류가 없다

신형철

발행일 2016-09-23 제1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1755년 '리스본 대지진'때 리스본 재건시킨 영웅
누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재난상처 달라져
불법 연루된 권력자들 틈에 국민들은 유기된 느낌


2016092201001356900065651
신형철 문학평론가
지진이 일어난 그 밤에 난생 처음 집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나라 사람 대부분이 그러했겠지만, 이전의 나와는 달라졌다.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지고 가족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다. 예전에 사놓고 다 읽지 못한 책 하나를 다시 꺼내든 것도 그 다음날이었다. '운명의 날'(니콜라스 시라디, 강경이 옮김, 에코의서재, 2009)은 '리스본 대지진'(1755년 11월 1일)의 경과와 결과를 잘 정리해 놓은 책인데, 애초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리스본 대지진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른 기분으로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이 책의 후반부, 즉 당대 유럽 지식인들의 다양한 지적 반응과 상호 논쟁을 정리한 대목만 읽었다. 이 세계야말로 신이 설계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책 '신정론(변신론)'(1710)이 리스본 대지진 이후 볼테르의 '캉디드'(1759)에 의해 어떻게 논박 당했는지를 살피고 이로부터 세계관의 두 유형을 추출해내서 그 논리적 완결성과 인간적 호소력의 차이를 가늠해보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내 협소한 관심사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책의 앞부분을 읽었다. 지진이 발생한 그 날의 상황, 1차에서 3차까지 계속된 지진의 경과, 그리고 그 막대한 피해와 끔찍한 고통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포르투갈 왕가와 그 측근들의 대처가 눈에 밟혔다. 그날 주제 1세와 그의 가족들은 리스본이 아니라 휴양지 벨렝에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 무능력한 왕은 망연자실 상태였고 신부들은 신의 심판을 받은 땅을 버려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었다. 그때 구원자처럼 나타난 것은 당시 대다수 권력자들보다는 낮은 계급 출신이었던 신하 카르발류였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이 형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왕이 묻자 카르발류는 답했다.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이 명쾌한 대답을 듣고 왕은 카르발류에게 비상사태의 전권을 주었으며 카르발류는 카리스마적인 능력을 발휘해 리스본을 재건할 수 있었다.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지진은 예측할 수 없으니) 지진 발생 자체는 신의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더라도, (대처와 복구 등으로 이루어질) 지진 이후의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뜻이라는 생각을 새삼 했을 따름이다. "재난은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만 '자연적'일 뿐 재난 이전과 이후는 순전히 '사회적' 사건이다" 라는 책 소개에 이끌려 펼쳐보게 된 '재난 불평등'(존 C 머터, 장상미 옮김, 동녘)은 거의 같은 재난이 발생해도 부국의 사망자 수는 빈국의 10분의 3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고한다. 요점은 간단하다. 누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재난의 상처가 현격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오늘날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불법에 연루돼 있는 것 같은데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해 보인다. 정치권력, 사법권력, 언론권력, 그리고 재벌권력들 간의 강고한 이익 연대 바깥에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그냥 유기(遺棄)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복지'는커녕 '생명' 자체가 문제인 시대다. 어쩌면 이 나라 최상층 권력자들은 국민 몇 백 명 죽는 것쯤은 괘념치 않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로 300명이 죽었고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수는 400명이 훨씬 넘는다. 국가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죽게 놔둔' 것은 맞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어떤 재난이 오든, 그 재난 이후도 재난일 것이다.

한국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작년은 '내부자들'과 '베테랑'의 해였고 올해는 '부산행'과 '터널'의 해인 것 같다. 앞의 두 영화는 통쾌한 권선징악으로 끝나지만 그 '시적 정의'(poetic justice)는 판타지일 뿐이고 진정한 메시지는 타락한 권력의 적나라한 실상이었다. 집단적, 개인적 재난을 다룬 뒤의 두 영화의 진정한 공통점도 주인공(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생존이 국가의 무능과 비겁에 맞선 개인 각자의 자력구제로 성취됐다는 사실에 있다. 지금 이곳에는 왕실(권력)의 서사와 백성(재난)의 서사만 있다. 카르발류가 없기 때문이다. 영웅으로서의 카르발류가 아니라 시스템으로서의 카르발류 말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신형철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