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협력과 공유… 음악이 답이다

원제무

발행일 2016-09-28 제1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서로 다른 사람, 계층, 지역
제도권과 비제도권, 위와 아래를
협력적 정신으로 이어주는게
예술이자 정책이 할 일이다
더 큰 도시적 공동선 조성 위해선
고민과 방향성 잊지 말아야


2016092501001467000071551
원제무 한양대 교수
도시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지칠 때 산이나 공원처럼 자신들이 좋아하는 공연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음의 아름다움, 감수성, 해학, 시대에 대한 통찰력 같은 쾌감으로 가득히 충전되어 돌아오게 된다. 음악은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이라 음악 듣기는 몸의 잠든 감각을 일깨워 준다.

공연을 제공하는 연주자 입장에서 보면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첼로앙상블 리허설을 하거나 연주할 때 멜로디와 베이스, 그리고 코드와 지시어를 완벽하게 채운 악보와 이를 옮겨놓은 실제 연주 간에는 악단마다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이 차이는 연주자의 악보에 대한 해석, 연주단 리더의 스타일, 연주기법, 연습량, 연주자의 곡에 대한 애착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연습은 혼자만의 음악 행위이고 리허설과 연주는 집단적 경험이다. 연주에서 연주자들을 괴롭히는 지시어는 '에스프레시보(espressivo)', 즉 '풍부한 표현'이다. 이 지시어를 음향으로 변환시키려면 작곡가의 의도, 연주장의 환경, 청중들의 호응도, 단원들의 표정, 리더의 지휘 등을 살펴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리허설에서는 어느 부분에서 어느 파트가 어떤 음색으로 연주해야 하는지를 협력해서 공유해야 한다. 예컨대 '점점 느리게(ritardando)'라는 지시어를 얼마나 느리게 할지를 협력적으로 의사결정 해야 한다. 연주단원들 사이의 실제 소통은 눈썹을 찡긋 올리거나, 심음 소리를 내거나, 잠시 흘낏 시선을 던지는 식의 비언어적인 공유적 동작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앙상블은 단원의 음악적 렌즈에 따라 다차원을 보려는 입체파, 일순간 감성을 담고자 구체성을 지워버린 인상파 등의 다양한 음으로 표출된다. 이때 서로 간의 상호작용과 교환은 불가피하다. 예술을 하려면 이처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자의 음악적 습관을 공유된 의식의 연주영역으로 끌고 들어가기 위해선 상향식 협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와 같은 예술적 협력은 도시정부나 회사에서도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목표이자 가치가 된다. 어느 조직에서든 조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협력적 상호작용이 절대적이다. 경영과 행정이 성공하기 위해선 협력적 생태계가 가동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협력적 공유사회(Collaborative Economy)는 협력적 공유도시에 대한 강한 논리적 토대를 마련해준다. 협력적 공유도시라는 패러다임은 현재 우리 도시에서 시민단체, 협동조합, 아파트 입주자회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서 시장과 정부서비스를 보완·대체하는 '제3의 거버넌스'라고 정의되곤 한다.

협력적 공유사회는 공유경제와 이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 포천지가 발표한 세계 유니콘 기업(1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보유한 스타트업) 중 최상위 순위 기업은 우버, 에어비앤비, 샤오미, 스냅챗, 플립카트… 모두 자산을 소유하지 않은 공유업체이다. 이들 공유기업이나 공유도시의 본질은 협력, 연결, 매개 플랫폼, 통제이다.

협력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하여 함께 행동하는 협력정신이 있어야 한다. 협력적 도시란 생산자vs소비자, 기업vs근로자, 정부vs시민, 정부vs기업, 시민vs시민 등이 함께 삶을 살아가면서, 공유하고, 협력적으로 운영되는 공동체가 많은 도시를 의미한다.

협업소비, 동료생산(peer production), 상호조합, 이익과 가치의 공유 등 협력적 상호관계에 기반을 둔 도시경제가 바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음악이건 경제이건 바라보는 시각의 중심은 도시민들이 고통받는 현장이다. 예술과 정책 그리고 경제는 도시의 가장 아픈 곳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 계층, 지역 그리고 제도권과 비제도권, 위와 아래를 협력적 정신으로 이어 주는 게 예술이자 정책이 할 일이다. 이처럼 급격한 시대적 패러다임 변동 시기에는 보다 더 큰 도시적 공동선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방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제무 한양대 교수

원제무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