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경인일보 70+1]대한민국 열차 어디로 가나

오늘을 사는 한사람 한사람 적나라한 '맨얼굴의 고민들'
낡은 궤도의 절망 딛고 새로운 성장궤도로 환승하라

경인일보

발행일 2016-10-07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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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열차 어디로 가나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고용절벽에 고통받는 청년 아우성
100세시대가 축복일지 저주일지…
지하철 승객들의 하루출발 엿보기

경인일보 기자들이 경기·인천에 거주하는 지하철 승객 5명과 하루의 출발을 함께 했다. 수도권 지하철은 대한민국의 대동맥이고 신경망이다. 도시의 지하를 누비지만 지상을 지배한다. 승객들은 혈관세포이자 신경세포다. 그들이 건강해야 '대한민국열차'가 안전하다. 그들의 표정이 궁금했다. 그 표정 아래 숨겨진 오늘의 고민을 들어봤다.

안타깝지만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그들의 고민은 깊었다. 그 고민들이 실존적이라면 1945년 출발 이후 끊임없이 성장궤도를 돌던 '대한민국열차'는 궤도이탈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천의 한 취업준비생은 3년의 백수생활에 지쳐있고, 안양역에서 만난 70대는 활짝 열린 장수시대의 한 복판에서 할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30대 워킹맘은 출산의 사회적 후유증을 단단히 겪고 있었다. 소중한 아이를 얻은 대신, 출산육아 장려정책을 비웃는 부조리한 사회와 정면으로 맞서는게 힘들어서다.

40대 가장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느라 희생한 가정과 자신으로 인해 허무한 한숨을 지을 때가 많고, 은퇴를 앞둔 50대 은행원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고민으로 머리가 분주하다.

이들의 고민속에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맨 얼굴이 비친다. 청년들은 고용절벽에 절망하고, 인구절벽의 시대라지만 워킹맘은 출산과 육아가 여전히 두렵다. 준비안된 예비 은퇴인력들은 은퇴 이후의 경쟁이 지금까지의 경쟁사회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가 않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노령인구에게 100세 시대가 축복일지 저주일지 장담하기 힘들다.

대한민국열차는 장기불황의 터널 입구에 진입할 모양이다. 모든 경제지표는 20년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북한 핵무장으로 초래된 국제정세는 심상치 않고, 원자력발전소 부근이 진앙인 경주지진도 우리의 오늘을 흔들고 있다.

이들에게 그래도 살아볼만한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열차는 현재 안전운행중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할 사람들은 묵묵부답이다. 마침 김영란법이 발효됐다. 대한민국열차는 낡은 궤도를 버리고 새로운 궤도로 진입할 수 있을까.

그래도 절망은 금물. 대한민국열차 탑승객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은 오늘도 희망을 품고 지하 플랫폼 너머 환한 세상으로 향한다.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아무리 오늘이 힘들어도 "영혼까지 팔지는 않겠다"는 청년백수의 다짐속에 의연히 타오르는 우리의 희망을 본다.

#20대 취업준비생
"면접가니?" 행선지 묻는 어머니에 울컥… 지옥철 출근 한번 해봤으면


오전 7시 30분 경인전철 주안역 입구를 들어서는 김명세(29·가명) 씨의 발걸음이 무겁다.

"아침 일찍 어디 면접이라도 가니?"하고 묻는 어머님의 질문에 귀찮다는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집을 나선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밤늦게 구직사이트를 뒤지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점심때가 되어서야 일어나던 전형적인 백수 생활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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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니 지인의 결혼이 있을 리도 없고, 어색하게 양복을 입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나의 이른 아침 출타의 목적은 분명한데도, 응원이나 격려의 말 대신 굳이 행선지를 캐묻고야 마는 어머니가 미워서 그만 성질을 부리고 말았다.

혼자 산다면 굳이 티를 내지 않고도 조용히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면접을 보러 가는 티를 팍팍 내고 집을 나서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더 짜증이 난다. 불편한 마음으로 올라선 플랫폼은 이미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피곤한 얼굴이지만 전철을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출근길이 일상이 된 사람들의 모습이 김씨는 부러워진다. 줄을 서니 전철 스크린 도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색한 정장을 걸치고 있는 꼴이 영락없는 '취준생'의 모습이다. 그는 또 주눅이 든다.

열차가 도착하고 바지에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부평역을 지나니 전철은 이미 만원이 돼 전철 안 공기가 답답하다. 그 순간 할머니가 내 앞으로 와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오랜만에 타 보는 만원 전철이어선지 역에 정차할 때마다 승객들이 이리저리 쏠리며 제대로 서 있기 힘들었다. 지금 면접을 보러 가는 회사에 합격한다면 출근길이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행복한 상상인지, 불행한 상상인지 자신도 헷갈리지만, 당장은 지옥철이라도 타고 출근 한 번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SNS에서 '노동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어떤 회사의 채용공고가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노동법을 모른다는 증명서라도 떼서 제출하고 싶은 마음이다. 3년의 백수 생활 때문에 자존감은 땅에 떨어졌다.

어느덧 시청역이다. 개찰구를 빠져나오며 계단을 뛰어오른다. 마음을 추스르며 다짐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영혼까지 팔지는 말자고….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30대 워킹맘
'아이 둘 낳으면 행복' 공익광고 비웃는 사회 편견의 굴레


'제발 열만 나지 말아라'

20일 오전 8시 광교 중앙역 승강장.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김민영(31·여)씨의 머릿속은 온통 어린이집에 맡기고 온 3살 아이 생각뿐이다. 아이는 밤새 열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덕분에 김씨는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행히 아침에 열이 내려 가까스로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오후에 다시 열이 난다면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한다. 아이가 아픈 것을 걱정할 틈도 없이 아픈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안된다. 아이도 서럽고 엄마도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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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잔인한 현실도 잠시, 시계를 보니 오늘도 지각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아이를 생각하던 뇌가 회사로 옮겨간다. 복직 이후 상사의 잔소리는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으로 이어졌다. 결혼하기 전보다 일을 못한다, 이래서 여자들은 안된다는 말은 일상적인 언어가 되었고, 일부러 주말출근이나 저녁 회식을 잡는 식으로 괴롭히기도 했다.

잠을 줄이고 점심시간까지 반납하며 업무를 마무리해놓아도 평가는 차갑기만 하다. 아이 때문에 일을 못할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의 굴레에 갇힌다. 직장상사도 아이 둘을 키우는 남성직원이다. 그런데 아이 키우는 현실을 왜 이해하려 들지 않을까. 상사의 얼굴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무거운 생각을 돌리려고 지하철 전광판을 바라봤다. 때마침 전광판 속에는 아이를 둘 낳으면 더 행복하다는 공익광고가 나오고 있다. 김씨는 문득 2년전 일이 기억났다. 김씨는 아이가 돌이 됐을 무렵 복직을 했다. 할 수 없이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겼지만 내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가뜩이나 허리가 좋지 않았던 엄마는 아이를 돌본 이후 디스크가 악화됐고 육아 문제로 부딪히다 보니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그런 판국에 둘째라니. 김씨는 당장 아기 한 명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는 마당에 아이 둘을 낳는다면, 그땐 정말 회사를 그만둬야 될지 모르겠다는 서글픈 상상을 했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그녀가 내려야 할 곳을 알리는 안내가 나왔다. 내려야 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가 닫히고 다시 가방을 고쳐맸다.

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씨는 힘을 내 계단을 오르며 이제는 습관이 돼버린 마음 속 주문을 되뇐다. '계단 끝 출입구에 열린 환한 세상처럼, 언젠간 인생이 환해지는 시절이 올테지.'

/공지영 기자jyg@kyeongin.com

#40대 직장인 가장
강남 출근 19년차 숙취와 싸우는 아침
두 딸 미래에 희망 걸며 외로움 이겨내

오전 8시 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 서울 강남으로 출근하는 19년차 회사원 김모(48)씨는 열차가 출발한다는 신호음에 쫓기며 지하철을 탄다. 전날 회식으로 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지만 서 있을 자리를 찾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대출을 받아서 장만한 지금의 집이 아니었으면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해야 했다. 그 전까지는 광주시에서 강남으로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피곤하든, 숙취가 남아있든 오전 6시에는 일어나 차에 시동을 걸어야 제 시간에 출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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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갖고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위치에 올랐지만 요즘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각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두 딸은 오후 11시에나 들어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기 바쁘니 하루에 30분도 채 얼굴을 못보는 듯하다.

아침마다 잠과 싸우는 딸들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 학교를 보내려는 아내가 전쟁을 벌이는 소동에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일상이다.

지난 휴가에는 몇 주간 가족들을 설득한 끝에 함께 여행을 떠났지만 스마트폰에 빠진 딸들과는 흔한 고민 하나 나누지 못해 아쉽기만 했다.

사실 김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롭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 '타자기 세대'였던 그는 이내 컴퓨터와 씨름을 해야 했고 후배들과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영어와 중국어 등을 배웠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로는 퇴근 시간마저 사라져 '이제는 인공지능과 싸운다'라는 느낌마저 든다.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난에 울상이라지만 그의 세대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치렀다. 어느 세대가 더 힘든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신세대들이 그래도 중년들은 행복한 청년기를 보냈다며 자신의 세대가 치른 노력을 폄하할 때는 억울하다.

이제 경제적으로나, 직장 내 위치로나 안정을 찾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시 '허무함',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 이전에 싸움이 '생존'이라면 지금은 '나약해지는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김씨는 공부 잘하는 두 딸이 몇 년만 지나면 대학에 입학해 서울행 지하철을 함께 타고 갈 것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자신도 입시전쟁을 겪었기에 애들 학원비로만 100만원이 넘게 지출하고 있지만 아까울리 없다.

아직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것이 있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남아있어서 오늘 하루도 버틸 힘을 얻는 것 아닌가. 그때 2호선 서초역에 멈춘 전철은 그와 그 비슷한 또래를 한참이나 쏟아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은퇴앞둔 50대 은행원
노후 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 머리 큰 자식 문제엔 한숨만


매일 아침 7시가 되면 안양역에서 1호선 상행선 전철에 몸을 싣는 은행원 양모(55)씨는 '언제까지 출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후배들은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데 자신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낼 수 없다.

올 연말 정기인사에서 승진하지 못하면 후배들 눈치에 한직으로 나와야 한다. 아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직을 떠나야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선배들이 퇴사할 땐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자신의 일이 되고 보니 준비해놓은 것이 없어 두렵기만 하다.

입사 동기 절반 이상이 조직을 떠났고 얼마 뒤면 자신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격세지감마저 든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명패를 볼 때면 쓸쓸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때론 감사한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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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초·중학교를 나왔지만, 나름 공부를 잘해 고등학교는 친척들이 있던 대도시에서 유학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취업 1순위에 손꼽혔던 은행에 취직해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결혼하면서 아파트 한 채도 장만했고 딸, 아들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풍족하진 않았어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잘 지내온 듯하다.

퇴직금과 가입해 둔 연금보험이 있어 부부의 노후 걱정은 조금 덜 수 있겠지만, 자식 문제 앞에서는 해답이 없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딸은 어릴 때부터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했던 성격처럼 명문대에 떡하니 붙고 1학기엔 장학금까지 받아 어깨춤을 췄는데, 고 1인 작은 아들은 아예 공부와는 담을 쌓고 있으니 부아가 치민다.

은퇴가 더이상 '쉬어야 할 때'가 아닌 만큼 양씨도 선택이 아닌 필수인 노후준비에 들어갔다. 30년 가까이 은행에서만 일해 온 터라 은행FP(자산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한국재무설계사, 국제재무설계사 자격증을 공부중이다. 또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공인중개사와 부동산 경매학원도 다녀볼까 고심하고 있다.

양씨는 신길역에서 여의도역으로 가는 9호선으로 환승할 때마다 자신도 인생의 환승역을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성호 기자 moon23@kyeongin.com

 

#70대 은퇴자
상행선 출근 일과 은퇴후 온천행 하행선
아직까지 새로운 도전… 종착역 멀었다


오전 10시, 출근하는 직장인이 빠져 한산한 안양역 승강장에서 김민웅(가명·75)씨는 온양온천으로 향하는 지하철 1호선을 탔다. 김씨는 30년 간 서울 소재 K대학교에서 전기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했었다.

아침마다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도착하기 전까지 독서를 하는 것이 김씨의 반복적인 일과였다. 김씨가 탄 열차는 늘 서울로 향하는 상행선이었지만 은퇴한 뒤론 하행선을 타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교회에서 장로로 재직하는 김씨는 은퇴 후 대부분의 일과를 교회에서 보낸다. 일요일은 물론이고 평일 새벽기도·철야기도 모임, 수요일·금요일 저녁 예배까지 교회의 모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모범신자'다. 김씨는 이날도 교회에서 만난 또래들과 함께 온양온천에 놀러가는 길이다. 친구들은 김씨처럼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는 노인들로, 이들은 만 65세 이상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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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지요." 은퇴한 지 10년째, 매일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면서 김씨는 고민이 많다. 은퇴 후, 삶이 무료해질 것을 두려워 한 김씨는 처음엔 교회의 중·고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려했다.

수십년 간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고민도 함께 나누고, 공부도 가르치며 사는 것이 김씨가 꿈꾼 은퇴자의 삶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머리가 희끗하고 말도 느린 노(老)교수에게 수학을 배우려 들지 않았다. 한 두명 붙어있던 아이들은 이내 젊은 선생이 가르치는 학원이나 과외자리로 옮겼다. 점점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사라지고 주변엔 또래 노인들만 남았다.

세월을 함께한 부부 사이에 말이 사라지듯, 김씨와 친구들은 말이 없다. 각자의 자식이 무엇을 하는지, 본인들의 은퇴 전 삶이 어땠는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이대로 끝내기엔 남은 인생이 아쉬워요." 온양온천에서 다시 안양으로 향하는 상행선을 타며 김씨는 새로운 삶을 그려본다. 김씨의 작은 첫 걸음은 또래들과 공부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원칙도 하나 세웠다. 주제는 자유롭게 하되, 모임의 구성원은 익숙한 교회 친구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할 것. 김씨는 무엇이 되었든,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 아직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 인생이란 기찻길을 걸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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