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경인일보 70+1, 품앗이]경인일보가 찾아낸 품앗이人들

특출난 능력보다 측은지심 간직한 '평범한 영웅들'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6-10-07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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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어려운 이웃들의 노후주택을 무료로 보수해주는 조은상 두원인테리어 대표 ② 4년간 2억원대 의류를 기부한 송재영 이에스녹턴 대표 ③ 고교 생활을 호스피스 병원 봉사활동으로 채운 성남서고등학교 석민규군 ④ '골프 꿈나무들의 조력자' 최연이 시흥골프클럽 회장 ⑤ 반찬나눔 봉사로 지역사회 누비는 신기남 이천시 증포동 봉사단장 ⑥ 품앗이 콘서트를 열고 있는 (사)어설픈 연극 마을 이원승씨 ⑦ '다문화가족의 대부' 이병희 오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⑧ '지팡이 할아버지' 허정만옹
세대·계층간 단절로 공동체 무너져
연민의 정 품은 한국인DNA 되살려
냉정한 사회 온기 불어넣자는 취지
품앗이는 옛 것이 아닌 현대적 가치

착한 마음 먹기 참 힘든 시대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주변의 이웃을 돌아볼 한끗의 여유도 찾기 힘들다. 측은지심은 옛말이 돼 버린지 오래다. 이런 시대에 남을 불쌍히 여기는 착한 마음이라니.

그러나 대한민국이 걸어왔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우리의 DNA에는 이웃과 공동체를 향한 연민의 정이 내장돼 있다. 저 먼 남쪽 바다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가장 먼저 달려가 구호를 시작한 건 민간단체였고 민간잠수사들이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어민들의 생계가 파괴됐을 때 전 국민이 두 팔 걷어붙여 기름 때를 벗겨냈고, IMF 사태 때도 장롱 속에 꽁꽁 숨겨둔 작은 금반지까지 꺼내다 기부했던 민족이다.

경인일보는 지난 7월18일 '품앗이 글로벌 캠페인'을 시작했다. 전통적 가치인 품앗이로 싸늘하고 냉정한 네트워크 사회에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진 품앗이 일꾼을 발굴해 알리는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을 연재중이다.

그동안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된 품앗이인(Pumassian)들은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이웃이었다. 그들이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거나 별도의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측은지심, 타고난 착한 마음이 이끄는대로 이웃과 공동체에 자기 품을 보태주었을 뿐이다.

■ 일상에서 시작하는 품앗이

지난 8월 폭염이 한창이던 그 때 우리를 시원하게 만들어 준 허정만(79)옹의 이야기는 품앗이 정신, 그 자체였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서 주워온 죽은 나무로 지팡이 만드는 일을 했다. 지팡이가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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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팡이로 품앗이를 하게 된 건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등산을 갔다 죽은 나뭇가지를 꺾어 지팡이로 대신했더니 아주 편했단다. 나만 편하면 안되지 싶어 근처 복지관의 비슷한 또래들에게 나눠 줄 요량으로 고사한 나뭇가지를 주어다 지팡이를 깎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누게 된 지팡이가 500 여개에 이르렀다.

그의 품앗이는 사람을 향한, 세상을 향한 일관된 연민에서 비롯된다. 등산을 하던 중 썩은 나뭇가지가 떨어져 머리를 다치는 일을 겪은 후에는 톱을 들고 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위험한 나뭇가지를 베어냈다. 산을 오르다 낙상사고를 당한 뒤에는 혼자 18개 계단을 만들었다. 모두 다른 이가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한창 대입시험 준비에 바쁜 성남서고등학교 3학년 석민규 (19)군의 사례는 어른들의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석군은 매주 주말마다 용인시에 위치한 호스피스 병원인 샘물의원에서 암 말기 환자를 돌보고 있다.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이제 석군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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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재능기부를 이어온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시지부 회원들

혼자만 경험하긴 아까워 친구들과 함께 동아리를 결성, 주말마다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잘 던진 부메랑이 되돌아오는 것처럼 봉사에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고 말한 석 군은 "봉사활동은 부메랑과 같다"는 어른스러운 금언을 남기기도 했다.

■ 점차 퍼져 나가는 품앗이의 힘

살아가다 보면 타인의 도움이 동아줄같이 반갑고 힘이 될 때가 있다. 도움의 크기는 상관없다. 절실한 그때 도움을 받은 이들은 그 도움을 잊지 않고 다시 베푼다. 적어도 우리가 만난 품앗이인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천시 증포동에는 손 큰 할머니가 살고 있다. 신기남(63) 이천시 증포동 주민자치위원회 봉사단장이다. 물질적으로 이웃에게 도움을 줄 형편이 되지 않지만, 타고난 손맛으로 반찬 봉사 품앗이를 8년 째 이어오고 있다. 2천640㎡ 남짓한 밭에서 나는 각종 채소는 모두 이웃들과 나눠 먹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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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노병들과 태국 파병군 후손들

그가 반찬 봉사를 시작하게 된 건 젊은 시절 사별 후 5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면서 받았던 이웃들의 도움을 되갚기 위해서다. "이웃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진리를 전하기도 했다.

찢어질 듯한 가난에도 품앗이 정신을 잊지 않고 실천한 이에스녹턴의 송재영(34) 씨의 이야기는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16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포장마차로 생계를 이어가던 송씨에겐 든든한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도시락조차 싸올 수 없었던 송씨를 위해 돌아가며 도시락을 준비해왔고 수업시간에 필요한 준비물과 옷, 신발까지 사다주며 송씨를 도왔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그가 용기를 잃지 않고 지금의 성공을 이뤄낸 것은 친구들의 품앗이 정신 때문이다. 송씨는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의류를 지난 날 자신처럼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다문화 가족을 돕는 이병희(53) 오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한국어 강의 자원봉사를 하다가 아예 다문화 가정의 지키미가 되겠다고 결심한 사례다. 그의 이야기도 주목할만 하지만, 더욱 감동을 주는 건 도움을 받았던 결혼이주여성들이 어엿한 시민으로 성장해 또 다른 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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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주민들을 소리소문 없이 도와주는 '마당발' 백승철 오산시 초평동 체육회장

신입 이주여성들의 멘토가 돼 한국어 강사 보조 역할을 하기도 하고 같은 국가 출신 이주여성들의 살림을 보살피기도 한다. 한 사람의 품앗이 결과가 미치는 선한 영향은 그 크기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한 사람이 품앗이 씨를 뿌리면(Pumaseeding) 놀라운 결과를 만들수 있다.

세대간, 계층간 단절화를 겪으며 공동체가 무너져 가는 한국 사회에 품앗이는 퇴색하는 전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해 되살려야 할 현대적 가치이다. 사익 실현을 위한 무한경쟁을 강요받는 세상이다. 그러나 경인일보가 찾아낸 품앗이인들은 우리가 얼마든지 지금과 달리 인간답게 건강하게 살 수 있음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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