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양파… 채소·과일 다 취급
"파는 상인·사는 손님 상부상조"
단골에 "충성" 거수경례 웃음꽃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
파는 이도 사는 이도 매번 오던 얼굴들이 모여 사고팔고 하는 5일 장터는 정을 주고받고 행복을 나누는 장소다.
여주장터의 박정희(82)씨는 "파는 사람도 신세, 사는 사람도 신세"라고 말한다.
53년간 제철 농산물을 전문으로 취급한 장사의 달인이다. 장날이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장터의 삶을 살았다. 박씨가 말하는 '신세'는 상인은 돈을 벌고 손님은 원하는 물건을 얻으니 상부상조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신세'에는 따뜻한 정이 살아 숨 쉰다. 아무 생각 없이 오가다 눈이 마주쳐 가던 길을 멈추고 물건을 사 가는 사람, 장날마다 찾아와 점심을 사주겠다는 사람 등 장터는 정이 넘쳐흐르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특별한 장소다.
박씨는 18살에 가난한 남편에게 시집와 낳은 7남매를 장터 장사로 먹여 키웠다. 박 씨는 "가난이라는 두 글자에서 해방되려고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해서 끼니 걱정은 없이 살았지만 자식들을 잘 가르치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잘 살아주고 부모에게도 잘 해주니 고맙다고 한다.
주로 취급하는 농산물은 고추, 가지, 콩, 참외, 오이, 토마토, 자두, 살구, 감자, 양파, 조, 콩 등이다. 제철에 나오는 농산물은 가리는 것 없이 모조리 팔고 있다. 장사하러 가던 새벽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60살 되던 해에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동안에는 한강다리가 끊어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사고도 방송으로 접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여주장터를 비롯해 이천 장터와 가남 장터에도 보따리를 이고 다니며 먹고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쳤다. 3년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와서는 몸이 불편해 여주장터에서만 장사를 하며 단골손님들과 즐겁게 산다고 한다.
장날마다 보는 손님 중에 박 씨보다 나이가 많은 분에게는 거수경례로 '충성'이라고 인사를 하며 서로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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