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 韓國, 외로운 나라

이영재

발행일 2016-10-04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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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국민 여러 갈래 갈라져
사람들은 '구한말' 같다고 한다
답 찾지 못하면 민족 결말 뻔해
냉혹한 국제정세 살아남으려면
갈등과 분열 있어선 절대 안돼
'별일 있겠어?' 허송세월 하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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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오스트리아 출신 여행가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이 남 북 아메리카 두루 돌아보고 일본을 거쳐 조선 땅을 밟은 것은 1894년 여름이었다. 그는 이미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 들여 서구화된 일본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상태였다. 그러면서 조선으로 가는 증기선 켄카이마루 선상에서 곧 마주할 '조선'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큰 기대를 걸었던것 같다. 하지만 부산, 제물포를 거쳐 도착한 그는 500년 왕조의 수도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한 한성의 모습을 목도한다. '집들은 단순하고 황량한 황무지나 다름없다. 땅바닥과 거의 구분이 안되는 납작한 잿빛 오두막의 초가지붕 1만여개가 마치 공동묘지의 회색 봉분처럼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도로도 없고, 눈에 띄는 건물이나 사원 또는 궁전도 없고,나무와 정원도 없다. 형언할 수 없이 슬프면서도 기묘한 이 광경은 넓게 펼쳐진 도시와 야성적으로 솟아 있는 주변 산들로 인해 조금은 숭고한 인상을 준다.'

1894년, 조선은 암울하고 통탄스런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한 한 해였다. 2월 일어난 동학 혁명은 진행 중에 있었고 6월 갑오 개혁, 7월 청일 전쟁 그리고 마침내 12월 농민군 지도부 분열로 전봉준의 혁명은 실패했다. 이런 1894년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 훗날 나라를 빼앗기는 빌미가 되고, 우리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의 역사'로 끊임없이 점철 한다는 것을 그 역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894년 여름 조선땅을 밟았던 이 파란 눈의 이방인에게도 당시 조선은 촛불앞에 놓인 '불안한 나라', 호시탐탐 노리는 주변국가에 갇혀 있으면서도, 정쟁과 부패에 빠져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한심하지만, 어찌보면 '외로운 나라'로 비쳐졌다.

그래도 그는 모든 낭만적인 여행가들이 그렇듯 열강속에 갇혀 숨도 못쉬는 조선에 대해 나름대로 애틋한 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최악의 야만국가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이 반도국'에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저항해 농민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비겁한 조정은 청나라 군대 파견을 요청하고, 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군대가 들어와 남의 땅에서 전쟁을 치르는 꼴이 그에겐 불쌍하고 측은하게 보였을 것이다. '일본인과 중국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백성의 반란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넓은 지구상에서 조선만큼 백성이 가난하고 불행한 반면, 지배층은 거짓되고 범죄적인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기행문 '조선 1894년 여름'을 읽으면서 시종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어줍잖은 외교전을 벌이다 나라를 빼앗긴 당시 무능했던 조정과,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의 처지가 묘하게 겹쳐서다. 더욱이 지금 우리는 두나라 외에도 러시아, 일본, 그리고 북한에 포위되어 있다. 사면초가다. 그러면서도 어쩌지도 못하는 '외로운 나라', 딱 그꼴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더 답답한 것은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여러 갈래로 갈라져 서로가 서로에게 조롱과 야유만 남발하는 '분열'을 보노라면 한숨만 나온다.

1894년 조선은 주인이 없는 나라였다. 먼저 먹는게 임자였다. 있으나 마나 한 무능한 왕은 백성이야 어찌됐건 청나라나 일본 눈치를 보며 의미없는 권력을 유지하는데 급급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필두로 맺어진 수많은 조약들은 우리 땅을 먹기 위한 열강들의 야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 조약에는 늘 '불평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결국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다. 그 누구도 우리 편이 돼주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가 우리 편인가.

사람들은 지금 우리의 처지를 이구동성으로 구한말(舊韓末)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말만 하지 말고 우리가 어떻게해야 할지 답을 찾아야 한다. 역사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하는 민족의 결말은 뻔하다. 냉혹하기 이를데 없는 국제정치, 그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갈등과 분열이 있어서는 안된다. '별일 있겠어?'라고 허송세월하다간 1894년 조선의 여름이 그랬듯, '외로운 나라'로 살다가 결국 망국(亡國)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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