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고려 지진과 지금, 그리고 정치권

정진오

발행일 2016-10-10 제1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경주 강진·태풍 '차바' 정부 사후약방문만 남발
역대 한반도 발생 자연재해 살펴봤는지 의문
'고려사절요' 상·벌에 대한 기록 새겨 들어야


2016100901000514100025391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여러 해 전에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숙제처럼 읽어야 할 때가 있었다. 13세기 여몽전쟁을 취재하면서였다. 수많은 고려시대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특별하게 눈에 들어온 대목이 있었는데, 바로 지진이었다. 그 책을 읽을 당시만 해도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지진은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었다. 고려 때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지진이 자주 일어났다. 우리에게서 그 지진이 언제부터 남의 일로 치부될 정도로 멀어졌는지가 궁금했다.

"10월 기축일에 지진이 일어나 지붕의 기와가 다 떨어지고, 을미일에 또 지진이 있었다."(1226년 고종 13년)

"6월 경술일에 땅이 크게 지진이 있어 담과 집이 무너진 것이 있었다."(1260년 원종 원년)

"지진이 이틀 동안 계속되었다."(1343년 충혜왕 후 4년)

"7월 기묘일에 3일 동안 지진이 있었다."(1385년 우왕 11년)

'고려사절요'에 나오는 지진 관련 기사 중 몇 가지만 추려 적었다. 고려시대 지진은 시기적으로 때를 가리지 않고 자주 일어나는 천재지변이기도 했지만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한반도 이곳저곳에서 발생했다. 1320년(충숙왕 7년)에는 여름에 지진이 잇달았다. 6월에만 여섯 차례나 있었다. 7월과 8월에도 지진 기사가 한 꼭지씩 나온다. 강진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집이 무너질 정도로 강력한 지진도 있었다.

지난달 경주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지진 안전지대로 인식해 온 한반도에 집을 무너뜨릴 만큼의 강진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국민들을 짓눌렀다. 그 속에서 우리 정부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국민의 원성만 키웠다. 안전과 관련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국민안전처는 국민걱정처라는 비난을 샀다. 며칠 전 부산에 역대급 물폭탄을 떨어뜨린 태풍 '차바' 때도 정부는 사후약방문만 남발했다.

우리 정부가 역대 한반도에서 발생한 자연재해와 관련한 구체적 기록이나 살펴봤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있었는지, 물난리는 어땠는지 등을 알 수 있게 하는 역사기록을 국민안전처가 따로 관리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기록이 등장한 이래 지진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 몇십 년 잠잠했을 뿐이다. 그 기록들을 모으면 '지진 지도'가 되고, '해일 지도'가 될 것이다.

지금 정치권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내용이 '고려사절요'에 나온다. 1362년(공민왕 11년) 10월의 기록이다. 지진이 잇따르자 왕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정치의 잘못이 재변을 가져온 게 아닌가 하는 뜻에서였다. 그 물음에 신하들이 답했다.

"땅은 신하의 도리에 속하는데 이제 상(賞)과 벌(罰)이 밝지 않기 때문에 대소 신하들이 게을리 직무를 유기하며, 또 군사에 공로가 있다 해서 백정(白丁)도 갑자기 정승에 뛰어올라서, 천한 자들이 참람되이 조정 반열에 처하여 신도(臣道)가 흐리고 어지러워 지진이 있게 하였으니, 청컨대 지금부터는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관직 이외의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어, 명기(名器, 벼슬)를 중히 여기고 아끼시오면 좌우에 모두 바른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오니, 전하께서 누구와 더불어 바르지 않은 일을 하겠습니까."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