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고택기행·39]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해운산업의 역사적 상징… 근대 사무소 건축양식 잘 드러나
{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 인천출장소에서 지점으로 승격된 1886년 건립 }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16-10-13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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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고택기행 아트플랫폼 사무동5
일제강점기에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호리 기선회사, 조선우선주식회사 인천출장소(1924년) 등으로 사용됐다. 해방 후에는 동화실업주식회사, 천신항업, 대흥공사 등 항만관련 회사의 업무용 건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근대 해운 및 유통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개항이후 日 해운회사들 속속 진출
인천항 물류운송 독점업체 중 한곳
공공시설 아닌데 원형 보존돼 의미
현재 아트플랫폼 사무·자료실 활용

입구 상부 그리스 신전처럼 '의양풍'
평면 같은 모임지붕 단일 트러스로
사무실 바닥 공기통로로 습도 조절
해방후엔 항만 관련 업무용 건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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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개항 이후 인천은 국제 물자운송의 요충지였다. 뿐만 아니라 인천항에서 강화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산(노량진)에 이르는 국내 항구로서의 역할도 했다. 이에 따라 인천에는 일본 해운 회사들의 본점 혹은 지점이 설치됐다.

호리 리키타로가 세운 호리 기선회사 본점을 비롯해 일본우선(郵船)주식회사 인천지점, 오사카상선 인천지점 등은 회사소유 기선(汽船)으로 인천항의 물류운송을 독점했다. 이들의 배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당시에는 병력과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선박으로도 사용됐다.

현재 도쿄에 본사를 두고 해운업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우선주식회사는 1886년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인천지점 건물로 인해 인천시민에겐 익숙한 사명(社名)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 근대 건축물 중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종교 시설과 공공시설이 아닌 민간 소유의 건물이 이렇게 원형으로 남아 있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2006년 등록문화재 제243호로 지정됐다.

현재엔 내부 리모델링 후 복합문화공간 인천아트플랫폼의 사무실과 자료실로 활용되고 있다.

한양대 건축학과 동아시아 건축역사 연구실이 펴낸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기록화조사보고서'에선 이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인천 중구 해안동 1가 9에 1883년 4월 우편기선 미쓰비시회사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개설됐다.

1885년 10월에 우편기선 미쓰비시회사와 공동운수회사가 합병돼 일본우선주식회사가 설립되자, 1886년 7월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출장소는 인천지점으로 승격됐다.

'인천사정'에 따르면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출장소가 인천지점으로 승격되던 때 지금의 건물이 만들어졌다. 또한, 현재 건물은 벽체가 타일로 마감되어 있으나, 과거의 사진 자료와 '인천사정'의 기록 등에선 건립 당시엔 붉은 벽돌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빨간 색깔 벽돌조의 큰 건물 몇 동이 인천항 해안의 정면에 우뚝 솟아서 제물포 일대의 장관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일본우선회사의 인천지점이다. 메이지 16년(1883년) 4월 우편기선 미쓰비시 회사 부산지점의 출장소로 이곳에 처음 설치된 후, 메이지 18년(1885년) 10월 공동운수회사와 합병을 결정하고 이를 일본우선회사가 인계하였다. 메이지 19년(1886년)에 일본거류지 1호지에서 6호지에 이르는 대지에 점포, 창고와 사택 신축에 착수하여 8월 2일에 완성하여 지금의 가옥이 만들어졌다.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 '인천사정' 중에서

1899년에는 지배인 1명, 점원 3명 등 모두 4명의 직원이 근무했었다는 기록도 있다. 건물의 대지면적은 396.7㎡이며, 단층인 건물의 연면적은 244.63㎡이다. 19세기 말 업무용 건축물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며, 건축재료는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최근 인천아트플랫폼에 취재 협조를 구한 후 건물을 찾았다. 한중문화관 방향의 건물 정면은 좌우 대칭으로 처리됐다. 좌우 대칭을 강조하기 위해 출입구 상부는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두드러지는 특색인 페디먼트(Pediment)로 처리된 의양풍(儀洋風)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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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지하실은 없으며, 사무실 바닥 쪽에 공기가 통하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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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랫폼 사무실 내부 모습. 높은 천장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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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의 금고. 20㎝ 가량의 철제문과 2~3평 정도의 규모로 되어 있다.

세로 방향의 창문을 두어 수직성을 강조했고, 정면부 지붕에는 패러핏(Parapet)을 설치해 앞에서 보면 평 슬라브(Slab) 건물로 보이지만, 실제는 모임지붕의 건물이다. 일본에서 펴낸 '일본우선 변천'에 따르면 지붕구조에 사용된 트러스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평면을 단일 트러스로 구성했다.

천장 위에 중요한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 설치된 목재함과 이와 연관된 내벽 구성으로 인해 독특한 평면 형태를 띠고 있다. 입면 구성에 있어서 서양 고전건축 중에서도 도릭 양식(Doric Order)을 모방한 절충주의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축 당시인 1880년대 후반의 창호와 조적(組積)벽을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무실 안쪽에 설치된 커다란 금고는 회사의 규모를 알려주는 듯했다. 20㎝ 정도의 두꺼운 철제문을 단 금고는 2~3평 정도의 큰 규모였다.

건물 뒤를 봤을 때 2층 형태이기 때문에 사무실 지하 공간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하실은 없다. 다만, 사무실 바닥 쪽에 공기가 통하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어서 이를 통해 사무실 전반에 알맞은 습도가 유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호리 기선회사, 조선우선주식회사 인천출장소(1924년) 등으로 사용됐다. 해방 후에는 동화실업주식회사, 천신항업, 대흥공사 등 항만관련 회사의 업무용 건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근대 해운 및 유통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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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인천항을 통해 일본의 군수물자가 들어오는 모습을 그린 그림의 좌측 상단에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이 잘 드러나 있다. 점포 건물 외에도 현재 남아있지 않은 창고와 사택 등도 보인다. /인천 화도진도서관 제공

근대건축 전문가인 손장원 인천재능대 교수는 "이 일대 건축물이 주로 은행이나 관공서 등이었던데 반해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격식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던 회사의 업무용 건물이라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근대기 사무소 건축양식을 알려주는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글 =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사진 =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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