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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아내 치마 자른천에 아들향해 쓴 당부의글
3첩공개… 고난을 이겨내는법 현대인에 따뜻한 위로
병든 아내의 붉은 색 비단 치마를 바라보며 회한이 밀려들었을 게다. 가문이 멸족의 화를 당하고 두 아들이 벼슬길에도 오르지 못한 채 늙은 아내는 병세가 깊어만 간다.
시간은 재촉하는데, 유배지에 묶여있는 자신이 한스러웠을 것이다. 혼인한 지 30년이 되던 해 정약용의 아내, 풍산 홍씨는 정약용이 유배돼 있는 전남 강진으로,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비단치마를 보냈다.
그리고 4년 뒤 1810년 아내의 치마를 자른 천에 두 아들에게 당부의 글을 써 서책을 만들었다. 그 해는 정약용의 해배(귀양에서 풀려남)가 무산된 해이기도 하다. '하피첩', 노을빛 치마에 쓴 편지는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실학박물관은 내년 3월 26일까지 '하피첩의 귀향'을 주제로 특별전시를 개최한다. 총 4첩이라 알려진 하피첩 전권 중 현재까지 발견된 3첩을 대중에게 공개한다. 총 94장으로 이루어진 하피첩은 84장이 실제 부인의 치마를 잘라만든 천에 글이 쓰여져 있다.
"자손대에 이르러서 과거에 응할 수도 있고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피첩 내용의 대부분은 고향에 남은 두 아들과 후손에게 언젠가 폐족의 신세를 벗어나리란 희망을 담고 있는데, 묘하게도 '흙수저','헬조선'으로 자조하는 지금의 세대에게 주는 울림이 크다.
행여 자식들이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는 절절한 부성애와 더불어 올바른 가정 교육의 예가 될 만한 하피첩은 해서, 행서, 행초서 등 정약용의 다양한 서체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피첩이 대중에게 공개되기 까지 겪은 사연도 각별하다. 한국전쟁 당시 다산의 종손인 고(故) 정향진씨가 피란길에 수원역에서 하피첩을 잃어버렸고, 수십년이 지난 2006년 우연히 폐지줍는 할머니 수레에서 발견했다는 한 소장자가 TV 프로그램에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다시 행적이 묘연해졌던 하피첩은 2011년 파산한 부산저축은행 전 대표의 압류된 재산 속에서 발견됐고, 지난해 서울 옥션 경매에 나와 국립민속박물관이 구입했다.
통한의 세월을 산 정약용만큼이나 굴곡진 시간을 돌아 온 하피첩은 바람잘 날 없는 현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약용의 따뜻한 격려와 충고가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는 듯 하다. 전시문의:실학박물관 (031)579-6013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사진/실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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