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국정 역사교과서

이진호

발행일 2016-10-31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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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역사도 인정, 다양한 관점으로 구성돼야
밀실·편법 진행된 국정교과서 부작용 우려 점점 커져
발간될 경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기름붓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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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역사교과서를 한 종의 국정교과서로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학계를 비롯한 각계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고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뚝심'으로 국정교과서 작업이 진행됐다.

그간 북핵 등 다른 현안에 밀려 국정교과서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는 사이 교육부는 다음 달 전자책 형태로 전시본을 공개해 의견 수렴한 뒤 내년 1월께 최종본을 확정하고 3월 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다. 올해 내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당장 내년부터는 한 종의 국정교과서만 갖고 공부해야 한다.

역사 연구자들의 모임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는 지난 28일 제59회 전국 역사학대회를 맞아 "최근 박근혜 정권은 비선 실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문제를 노출했다"며 "국정교과서가 최순실 교과서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학계에 이어 정치권에서도 박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를 추진할 당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씨가 청와대 안팎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다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며 국정교과서에도 관여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만난 박 대통령은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자학사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폈었다'고 했다.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것이 어떤 부분이냐"는 물음에 박 대통령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했었다며 "박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면 어떤 '귀기(鬼氣)'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국정교과서의 대표적 논란거리는 1948년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일로 볼지, 아니면 대한민국 수립일로 봐야 할지에 대한 해석에 있다. 이 외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광복군 활동에 관한 해석, 위안부 표현 등도 논란이 일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앞서 지난 24일 '복면집필 역사 국정교과서, 닥치고 주문 강요하는 교육부'라는 성명에서 "당장 2017년 3월부터 수업시간에 사용할 교과서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학부모들은 교과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5일 광화문 앞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Vol.2' 집회가 열렸다.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불편한 역사가 많이 존재하지만,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런 부끄러운 역사도 인정하고 배워야 해요. 그렇기에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는 더 다양한 관점과 사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국정교과서로는 이러한 일들을 이뤄낼 수 없잖아요. 올해 내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당장 내년부터는 국정교과서로 공부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다시 검정교과서로 바뀐다고 해도 소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최소 3년, 최대 5년 동안은 상황이 바뀔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 누구든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했는데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나섰습니다." 중앙일보가 인터뷰한 한 학생의 말이다.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데 "부끄러운 역사도 인정하고 다양한 관점과 사료들로 구성돼야 한다"는 학생의 말보다 더 충실한 원칙이 있을까. 밀실에서 편법으로 진행된 국정교과서 부작용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학생, 학부모, 학계가 졸속 교과서라며 반대하고 정치권마저 불신하는 국정교과서가 예정대로 발간될 경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기름 붓는 꼴이 될 것이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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