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고택기행·42]조선기계제작소 사택

일제강점기 군수공장 사택… 먼지앉은 근대산업유산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6-11-03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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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동 조선기계제작소 기술자 사택

1937년 설립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 전신
근무자 수천명 주택난 해소위해 공급한 숙소
대부분 철거됐거나 일본식에서 한국식 '변형'

송현·화수동에 간부·노동자·기술자 주택 형태
조선인 노동력 수탈 근로보국대 합숙소도 의미
일본 전시 노동자 주택계획 파악 재조명 필요


만석동 도쿄시바우라전기(도시바) 간부 사택
인천 동구 만석동과 화수동 일대에는 1930년대 갯벌을 메운 자리에 조선기계제작소, 동양방직, 도쿄시바우라전기 등 대규모 공장들이 들어섰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인천으로 모여들었고, 일본인들도 공장을 경영하기 위해 인천으로 이주했다.

1940년대 군수공장 역할을 하면서 설비를 확장한 조선기계제작소에만 5천여 명이 일했다고 한다. 만석동, 화수동 일대 인구가 급증하면서 주택난이 심각해졌다. 당시 관공서에서 직원과 일반주민을 위해 주택단지(관영주택)를 공급했고, 공장들은 노동자 기숙사 등 사택을 지었다.

1930~1940년대 등장한 공장 사택은 도시개발 과정에서 대부분 철거됐거나 일본식 건물이 우리나라 건물로 변형됐다. 원형의 모습을 제법 간직하고 있는 몇몇 건축물이 남아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만석동과 화수동 일대에 있는 공장 사택들은 일제가 남긴 아픈 역사이기도 하지만, 당시 인천의 산업형태를 가늠케 하는 근대산업유산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지난달 29일 오전 이성진 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와 동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공장 사택을 답사했다.

다양한 형태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조선기계제작소 사택이 눈에 띄었다. 조선기계제작소 사택은 송현동과 화수동에 간부급 직원이 살던 집과 노동자가 살던 집 등으로 나뉘어 남아있다.

조선기계제작소는 일제가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던 1937년 설립된 회사로 인천 만석동에 자리 잡았다. 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의 전신이다. 광산용 기계와 선박 기계를 주력으로 생산했고, 1943년 일본 육군의 잠수함 건조 명령으로 조선소로 전환하게 됐다. 공장의 확충에 따라 인력도 자연스레 증원됐는데, 이에 따라 동구 화수동과 송현동에 근로자 숙소 99동을 신축했다. 일본인 숙소는 54동, 조선인 숙소는 45동이었다.

화수동 조선기계제작소 근로보국대 합숙소 터

송현동에는 1940년대 초반 지은 2층짜리 일본식 목조 주택들이 있다. 이성진 대표는 "규모로 미루어 볼 때 일반직원이 아닌 간부급 직원이 생활했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건물 외벽에 시멘트를 바르거나 타일을 붙여 건축 당시 모습이 변형됐으나, 지붕 쪽 환기구 등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방식은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송현동 솔빛마을 아파트단지로 걸음을 옮기자, 조선기계제작소 노동자들이 살던 병렬식 연립주택이 나왔다. 모두 8개 동이 있었으나 지금은 안쪽 2개 동이 철거된 상황이다. 집집이 다닥다닥 붙은 송현동 노동자 사택은 1940년대 노동자를 위해 공급된 대표적인 집단주택의 형태다.

일제가 전쟁에 참여한 탓에 자재가 부족해지면서 효율적으로 많은 노동자를 거주시킬 집이 필요했다. 대부분 20㎡가 넘지 않는 좁은 면적이며 공동화장실을 썼다.

지금은 증축 등이 이뤄져 외부 모습은 원형을 찾기 어려우나, 내부는 당시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집이 많다고 한다. 일본의 전시(戰時) 노동자 주택 건설 계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으로, 실측조사 등 학술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성진 대표는 "노동자 사택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수도국산 아래까지 대규모로 조성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산 쪽으로 갈수록 주거환경이 나빠졌고, 산 아래는 판자로 지은 '하꼬방'이었다는 게 당시 조선기계제작소에서 일한 노동자의 얘기"라고 말했다.

기술자들이 살던 곳으로 알려진 화수동 조선기계제작소 사택은 1937년 공장 건설 초기에 공장과 함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구조는 거실과 방 3개에 화장실을 따로 갖춘 현대식 주택이다. 같은 연립주택이지만, 전시체제에 지은 송현동 노동자 사택과는 대조적이다.

1960년대부터 이 집에서 살고 있는 이경모(77) 씨에 따르면, 이곳으로 이주해올 당시 한국기계공업(두산인프라코어) '과장급'들이 동네에 많이 사는 부촌이었다고 한다.

화수동 조선기계제작소 사택 인근에는 최근까지도 조선기계제작소 근로보국대 합숙소가 남아있었다. 근로보국대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가 조선인의 노동력을 수탈하기 위해 강제로 동원한 노역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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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보국대 합숙소는 중앙을 관통하는 복도 좌우로 연달아 비좁은 방이 있는 구조이고, 복도 끝에는 공동 화장실과 식당이 있었다.

일제의 수탈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던 근로보국대 합숙소는 최근 철거돼 인천 동구가 공영주차장을 조성했다. 이성진 대표는 "역사적으로나 건축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었다"며 "근대산업유산에 대한 가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선기계제작소 사택 이외에도 인천 동구 일대에는 도쿄시바우라전기(현 도시바) 인천공장 사택, 조선철도 공작창 사택, 동양방적(동일방직) 의무실, 조일장유주식회사 공장 등 근대산업유산이 즐비하다. 이 지역 근대산업유산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와 함께 중장기적인 보존·활용방안 등 재조명 작업이 시급한 상황이다.

/글 =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사진 =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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