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흘반난(吃飯難), 밥 먹기 어렵다

이영재

발행일 2016-11-07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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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의 詩 송경잡절에서 '최순실 파문' 떠올려
'인간은 100년 못돼 간다 너무 아등바등 하지마라'
靑인사들 이해했다면 작금의 실망·분노 없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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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인천본사 경제부장
며칠 전 김진태 전 검찰총장으로부터 책을 한 권 건네받았다. '흘반난(吃飯難), 밥 먹기 어렵다'가 책의 제목이다. 김 전 총장과는 1990년대 말 인천지검 특수부장과 출입기자로 처음 연(緣)을 맺은 뒤 지금까지 1년에 몇 차례 식사 자리를 갖는 것으로 소식을 끊지 않고 있던 터다. 10여 년 전 불교의 성자 수월(水月)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담아낸 책 '물 속을 걸어가는 달' 이후 두 번째 책 선물이다. 그는 글머리에 "이 책은 원래 검찰을 떠나면서 짐을 챙기던 중 혹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책상 위에서 나뒹굴던 시(詩)·문(文)을 한데 모아 퇴임식에 참석한 후배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알고 달라는 사람들이 있어 부득이 인쇄하게 되었다"고 적었다.

평생 법조인으로 한 길을 걸어온 그는 큰 스님들에게서 불교와 주역을 배웠고, 한문에도 능통하다. 한국, 중국의 한시와 문장, 불교 경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음미하고 풀어낼 수 있는 내공을 지닌 그가 빚어낸 책을 받고 나니 126개의 시문중 난해한 내용도 많았다. 최치원, 두보, 이백, 원효, 소동파, 이황, 조식, 측천무후, 임제 등 역사의 굽이 굽이에 살다간 사람들이 당시 처한 상황에서 선택하고 포기하며 쏟아낸 시문들이다. 지은이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았으면 참으로 오랜 시간 책과 싸움을 했어야 할 듯싶다. 서둘러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들춰보긴 했지만 김 전 총장이 오랜 시간 틈틈이 옛글을 찾아 읽고 덧붙인 소회를 모아 엮은 이 책을 하루 이틀에 이해하며 독파하기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늠하려면 몇 차례 더 반복해 읽어봐야 할 듯하다.

책장을 넘기다 발해고(渤海考)를 저술한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유득공의 시(詩) 송경잡절(松京雜絶)에서 '최순실 파문'을 떠올리게 하는 글을 볼 수 있었다.

/황량하구나 스물여덟 고려 왕릉이여/해마다 비바람 속 옻칠한 등만 깜깜한데/진봉산 속의 붉은 철쭉꽃은/봄이오면 여전히 층층이 피어나네/

저자는 해설에서 "(생략) 인간은 간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채 100년이 못 되어 간다. 그러니 너무 아등바등하지 마라. 인간이 간 뒤에도 그 철쭉은 그대로 남아 봄이 되면 꽃을 피울 것이다. 참으로 무상이다. 권력 무상을 넘어 인간 무상이다"라고 했다. 지금의 세태와 다르지 않아 한참을 봤다.

'흘반난(吃飯難)'은 밥 먹기 어렵다는 뜻이다. '밥'은 생존과 직결된다. 인생은 알고 보면 밥 먹고 사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세상에 밥 먹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을까.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투고 번민하고 갈등하고 울고 웃는다. 이 책에 실린 시와 글은 대부분 궁극적으로 밥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권력에 밀려나 유배를 떠나고, 아침엔 친구였던 이가 저녁에는 원수가 되고,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해 세상을 버리고, 알아주는 이가 없어 방랑하는, 인간사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역사의 굽이 굽이에서 살다간 선인들이 처해 진 상황에서 했던 선택과 포기의 지혜를, 청와대의 권력을 나눈 인사들이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대한민국을 이처럼 실망과 분노 속으로 몰아넣지는 않았을 듯싶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밥 먹고 살기 참 어렵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이영재 인천본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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