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 문학평론가 |
공은 함풍 4년 곧 철종 5년(1854)에 태어나 퍼블릭 스쿨을 거쳐 18세가 되던 고종 7년(1872) 대학에서 2년간 수학, 온축하였다. 고종 24년(1887) 잡지 '비튼' 크리스마스호에 발표된 '주홍색 연구'로 세상에 나오셨다. 공은 화학실험·바이올린 연주·사격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셨으며, 권투에도 일가견이 있으시었다.
의과대 출신 작가 코난 도일(1859~1930)이 본업을 버리고 문리를 얻은 덕에 공의 활약상을 그린 장편 4권과 단편소설 56편이나마 발표될 수 있었다. 공은 파이프로 남령초(南靈草, 담배)를 즐겼고, 주로 사냥 모자를 쓰고 다녔다. 공의 진영은 시드니 파젯(1860~1908) 화백의 삽화를 통해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갔다.
공은 베스커빌가의 저주, 글로리아 스콧 호의 비밀, 보헤미아의 스캔들 등 숱한 미제 사건을 명석한 추리와 논리로 해결하시어 일약 근대 시민사회의 아이콘이 됐다.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점증하는 범죄를 낱낱이 밝혀내 근대 자본주의사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독자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으신 것이다.
작가 코난 도일도 공의 눈부신 활약과 높은 인지도에 힘입어 고종 39년(1902) 에드워드 7세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도일 경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에게 자신의 에딘버러 의과대학 시절의 스승인 조셉 벨 교수를 모델로 공의 모습을 만들어냈노라 털어놓은 바 있다.
공은 평생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고작 '보헤미아의 스캔들'의 주인공 아이린 애들러를 잠시 연모해본 정도였다. 또 공은 왓슨 박사로 하여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는 것을 묵인했을 뿐 특별한 인간관계가 없어 후세에 전할 종유록(從遊錄)을 남기지 못했으니 이 점이 셜록키언(Sherlockian)들이 늘 통탄하는 바다.
'마지막 사건'(1893)이란 작품에서 천재적 범죄자인 숙적 모리아티 교수와 대결하던 중 폭포에 떨어져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빈집의 모험'(1903)이란 작품으로 10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복귀하셨다.
오호라! 공께서는 '셜록 홈즈 사건집'에 수록된 13편의 작품에서 보듯, 뭇 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다가 '베일 쓴 하숙인'(1927)이란 작품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으니 향년 73세였다.
공은 "무관(無關)이 유관(有關)"이요, "알 수 없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부주의하기 때문"이라는 숱한 명언과 함께 놀라운 일화들을 세상에 전하셨으니, 아아 공이야말로 추리소설사의 전설이며 장르문학의 귀감이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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