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경기, 문화원형으로 읽다·12]일본 교토에서 본 문화원형의 의미

몰라도 즐겁고
즐겁다 보니 알게 되는
그것이 문화원형 즐기기

권준우 기자

발행일 2016-11-09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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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개가 넘는 기둥이 끝없이 이어진 후시미이나리타이샤.

고궁·사원 모여있는 일본 옛수도 고루함보다 체험거리 넘쳐나
청수사 흐르는 폭포수 물 마시기 '지혜·연애·장수' 기원 긴 줄
'후시미이나리 타이샤' '헤이안 신궁' 주민 삶에 자연스레 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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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는 여행하는 이들에게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특히 문화원형의 경우 생성 과정에 대한 유래와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알고 나면 이끼 낀 비석 하나, 깨진 기와 한 장도 특별한 의미로 느껴진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보존과 승계라는 문화원형 고유의 의미를 고려했을 때, 문화원형은 관련 상식이 있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어선 안된다. 몰라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설화가 서린 곳이어도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부족하다면 대중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

역사적 가치 자체로도 소중한 것 아니냐는 반박이 뒤따를진 모르나, 그 가치를 평가하고 빛나게 하는 건 이 시대를 사는 대중들이다. 문화원형의 원활한 보존과 활성화를 위해선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 수 있는 '즐길 거리'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문화원형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몰라도 즐겁고, 즐기다 보니 알게 되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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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 입구.

이웃 나라 일본은 그 사실을 진즉에 깨우친 듯하다. 일본의 옛 수도인 교토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와 비슷한 느낌으로 오래된 절과 고궁, 사원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전통이 있는 도시다 보니 좋게 말하면 고풍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고루하다.

교토의 문화원형들 역시 각각의 사연과 설화들이 다양하다. 건축 양식부터 조경 방식까지, 제대로 알려면 사전지식이 필요한 곳들 투성이이다.

하지만 교토의 유적지에는 이곳이 사적 몇 호이고 누가 세웠으며 어떻게 사용됐는지 등이 쓰인, 우리나라에선 너무나 흔히 볼 있는 관광안내 입간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그 자리에는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하며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오미쿠지'다. 오미쿠지는 길흉을 점치기 위해 뽑는 제비를 뜻한다. 100엔을 내고 나무통을 흔들어 숫자가 적힌 막대기를 뽑은 뒤 숫자에 해당하는 서랍 안에 든 종이의 내용으로 길흉을 점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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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 오토와 폭포 앞에서 방문객들이 물을 떠마시며 기원을 올리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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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이나리타이샤의 사원에서 방문객이 손을 모으고 기원을 올리고 있다.

오미쿠지는 일본 내 제법 이름있다 싶은 사찰이나 사원에 가면 어디든지 볼 수 있는데, 각 사찰마다 모시는 신이 다르고 빌어야 할 기원의 종류도 다르기 때문에 장소별로 뽑는 맛이 있다.

유적지별로도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로 매년 300만 명 이상이 찾는 '청수사(淸水寺·기요미즈데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름 그대로 물이다. '기요미즈'란 맑은 물을 뜻하는데 이 사찰로 흐르는 오토와 폭포에서 유래됐다.

본당 밑에는 폭포에서 갈라진 세 개의 물줄기가 있는데 각각 지혜와 연애, 장수를 상징한다. 긴 장대형 바가지로 흐르는 폭포수를 떠 먹으며 각 물줄기가 상징하는 의미를 기원하는 게 이 사찰의 전통이다. 재미있는 것은 욕심을 내 세 가지의 물을 다 마시면 불운이 따르기에 오직 두 가지만 선택해서 마셔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유쾌한 불문율이 있기에 오토와 폭포 앞은 물을 떠마시기 위해 수십m 줄을 늘어선 학생들과 관광객들로 언제나 가득 찬다.

청수사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슈신사'로 이어지는 입구가 보인다. 인연을 맺어주는 신을 모시고 있는 이곳은 사랑을 이뤄주는 신사로 유명하다. 이곳의 명물은 신사 앞에 10여m 거리를 두고 일렬로 놓인, '러브 스톤'으로 불리는 돌 한 쌍이다.

이 돌 앞에서 눈을 감은 채 맞은 편 돌까지 걸어간 뒤 돌 바로 앞에서 눈을 뜨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설화가 담겨 있다.

청수사 시설관리 담당자 오토와 사토시씨는 "청수사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경치를 즐기고 소원을 빌며, 기분좋은 시간을 만들기 위해 오는 것"이라며 "단풍철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레이저쇼도 진행하는데 아주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교토역 부근에 위치한 '후시미이나리 타이샤'도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가득 차있다. '여우신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곳을 상징하는 것은 4천 개가 넘게 이어진 붉은 기둥(토리이)이다.

이곳은 농업과 상업의 신을 모시는 곳으로 예부터 생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입장료는 무료이기에 이곳은 주민들의 산책로로도 자주 애용된다. 울창한 숲 속에서 눈을 사로잡는 붉은 기둥 길은 전 세계 사진작가들의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는 거대한 문인 '사쿠라몬'도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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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후시미이나리타이샤 사원 앞에 놓인 여우모양 목각판에 그림을 그려 매달아놓은 모습.

기둥이 이어진 산 초입부를 오르다 보면 전체 코스를 완주할 수 없는 바쁜 여행객들을 위한 작은 사당이 나오는데, 이곳엔 기원문을 적어 매다는 용도로 만들어진 작은 여우 얼굴모양 목각판이 있다.

이것이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풍경도 나름 장관인데,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목각판에 기원문이 아니라 사람 얼굴, 여우 얼굴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려 매다는 것이 유행이 됐다. 그러다 보니 이젠 기원문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방문객들이 그린 각양각색의 그림들이 벽을 메우고 있어 이것을 하나하나 보는 것이 또 다른 재미가 됐다.

유적지보다 주변 조경을 더욱 부각한 곳도 많다. 교토가 일본의 수도로 자리한 1천100년의 역사를 기념해 지은 '헤이안 신궁'은 유난히 붉고 화려한 일본 유적지 중에서도 2중 기와와 화려한 처마가 유독 도드라지는 곳이다. 신궁 내부는 광장이라 칭해도 될 정도로 넓어 봄철이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연인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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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신궁 안 정원인 '신엔'에서 본 중앙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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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신궁 '신엔'에서 관광객들이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헤이안 신궁은 무료로 운영되는 반면, 신궁 내부에서 왼쪽으로 길이 난 '신엔'이란 이름의 정원에는 600엔의 입장료가 있다. 화려한 건축물보다 가꿔진 조경을 더 중요시하는 셈이다. 신엔 내부는 4개의 공간으로 분리돼 각각의 테마를 담고 있다.

호수와 어우러진 고목과 사찰, 이끼 숲 사이로 피어난 꽃 등 한적하면서도 정갈한 정취를 느끼기에 그만이다. 휴식 같은 여행을 즐기고 있는 이들에게 헤이안 신궁이 옛 수도의 부귀와 쇠락을 상징하며, 두 명의 왕을 모신 사원이 있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헤이안 신궁 안내담당자 코우키 카즈나리씨는 "헤이안 신궁 내부와 앞 광장은 가족들의 소풍과 산책, 휴식의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며 "사원의 역사나 모시고 있는 상징에 대해 처음부터 관심을 갖고 온 사람은 드물고, 여러 차례 방문을 통해 이곳에 대한 애정이 싹튼 사람들이 자연스레 헤이안신궁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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