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창

[오늘의 창]소소한 풍속도 바꿔놓는 '김영란법'

2016111301000822900041271
최재훈 지역사회부(포천) 차장
얼마 전 지역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한 기업인이 고교 동창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으며 깊은 갈등에 빠졌다. 30년 이상 우정을 나눈 이 친구가 공교롭게 공무원 신분이라 조의금을 얼마나 할지를 두고 고민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오랜 병치레로 최근 몇 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사정도 아는 터라 더욱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을 넘기며 '법의 힘'이 점차 피부에 와 닿는다. 이 법을 따르자면 이 기업인은 공무원인 친구에게 10만원이 넘는 조의금을 낼 수 없다. 친구가 딱해 보이고 마음이 무겁더라도 법이 이를 알 리 없다.

경조사는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매우 중요하게 여겨온 풍속 중 하나다.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나누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풍속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경조사가 법으로 규제되고 있다.



김영란법이 있기 전 이 풍속을 통제하려 법에 버금가는 강제성을 띤 캠페인이 있었다. 서슬 퍼렇던 80년대 '허례허식 추방운동'이다. 국가가 나서 대대적인 운동을 펼쳐 풍속을 바꾸려 했다. 당시 이 운동은 형편에 맞지 않거나 위화감을 조장하는 의례와 의식을 피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실 이 운동은 중산층, 서민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었다.

경조사의 풍속이 세기가 바뀐 지금, 청탁과 금품수수 등 부정부패를 막자는 법의 불똥을 맞게 됐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자리가 부정청탁이나 금품이 오가는 자리로 변질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세기 말 허례허식 추방운동이 그랬듯 21세기 초 김영란법으로 아름다운 풍속이 또 한 번 '어글리(ugly)'라는 누명을 쓰게 됐다. 경조사에서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 돈 봉투로 바뀌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야속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획일적인 규제가 순수한 마음과 흑심을 객관적으로 판별하기 어렵다는 이유라고 친다면 금액을 10만원으로 정한 기준은 또 무엇일까?

김영란법은 서서히 일상의 소소한 풍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쓰레기통에 마구 버린 쓰레기 중에는 간혹 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섞여 있듯이, 법으로 바뀌는 것 중에 우리가 그 가치를 잘못 보아 넘긴 것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법의 속성이기도 한 획일적 규제와 적용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할지는 모르지만 지나칠 경우 인간의 삶의 질마저 획일화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재훈 지역사회부(포천) 차장

경인일보 포토

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최재훈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