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2명의 '트 대통령'과 한반도

정진오

발행일 2016-11-14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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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전쟁 빌미·공산화 위기 탈출' 병주고 약 줘
트럼프, 미군주둔비 100%부담 등 주장 '격랑 예고'
'정치인 불변·최순실 자괴감' 이래선 美와 상대 못해


정진오 사진(새 데칼용)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예전의 우리 신문에 실린 미국 대통령 이름을 보면 폭소가 터진다. 케네디 대통령은 '케 대통령',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아 대통령'하는 식이었다. 마치 박 대통령, 이 대통령 하듯이 한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표현이지만 당시에는 친근감의 표시였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로 하여금 미국인과 우리의 이름 부르기를 비슷하게 함으로써 일종의 동질감을 심어주려 했던 게 아니었던가 싶다. 이번에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를 이렇게 옛날식으로 하면 '트 대통령'이 된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중 두 번째 '트 대통령'이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트루먼이 선배 격이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촛불 인파를 보고서 2명의 '트 대통령'과 한반도의 처지가 자꾸 겹쳐졌다. 트루먼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있을 때 우리는 근현대 최대의 격변기를 보냈다. 해방과 동시에 미 군정 치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분단이 됐고, 6·25 전쟁이 터졌다. 그 전쟁은 트루먼이 국무장관으로 앉힌 애치슨이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라인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한 게 주요 동인이 되었다. 북한 김일성과 소련의 스탈린에게 전쟁을 일으켜도 미국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준 셈이다. 트루먼 때 미군은 2번의 인천상륙작전을 펼쳤다. 우리가 다 아는 1950년 9월 15일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1945년 9월 8일에 있었다. 이때 미군 사령부는 일본 도쿄에 있었다. 해방군으로 상륙하는 그 미군을 환영하기 위해 수 많은 인천시민들이 인천항 부두에 몰려갔다. 그런데 당시 질서유지를 일본 경찰이 맡았고, 그 일경이 쏜 총에 맞아 여러 시민이 죽거나 다쳤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찌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듯 첫 번째 '트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병 주고 약 주고를 반복했다. 전쟁의 빌미를 주기도 했고, 또한 부산만 남은 공산화의 위기에서 다시 분단의 원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당시 세계 2차대전 승리의 주역인 미국의 위세에 눌려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정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서로 갈라져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런 탓에 친일문제 해결도, 남북문제 처리도 시원하게 하지를 못했다.

이번에 당선된 '트 대통령'은 역대 가장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울 것이라고 한다. 또 미군 주둔비용도 100% 부담하라는 얘기도 했었다. 미국이 그동안 일본과 한반도 방어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미국 본토가 전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군이 한반도에까지 전개하는 것은 한국의 방어가 곧 미국의 방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순망치한을 막자는 의도다. 트럼프는 힘을 내세워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자기주장만 펼칠 수도 있다. 이런 트럼프 당선으로 세계가 야단이다. 한반도 역시 첫 번째 '트 대통령' 때처럼 격랑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졌다.

엊그제 서울의 밤을 환하게 밝힌 100만의 촛불은 우리 국민의 수준이 70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사람들은 요즘 최순실 얘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박근혜 대통령 이야기로 하루를 맺는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국민들은 집단적 자괴감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트럼프의 미국과 상대할 수가 없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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