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경기, 문화원형으로 읽다·13]일본 교토(Ⅱ)

전통품은 사람들 '보존과 성장' 새로운 형태의 문화로 거듭나다

권준우 기자

발행일 2016-11-16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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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니넨자카 거리에서 바라본 호칸지.

청수사 길목 니넨자카 일대 복층 목조 '마찌야' 일본 美의 상징 관광객들 몰려
대중이 주류인 '무로마치 문화' 시작된 곳… 주민들 경관·가옥 등 자발적 관리
타워·공항 신설 마다한채 '상향식 건축물 규제'로 정부도 아낌없는 정책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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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기요미즈데라)로 이어지는 길목인 니넨자카 일대는 우리나라의 민속촌과 닮아있다. 구불구불하고 고즈넉하게 형성된 거리는 마치 시간을 돌린 듯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도보를 따라 마찌야 형태의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마찌야는 일본의 전통 가옥으로 주로 복층 구조의 목조건물 양식을 띠고 있다.

민속촌과 다른 점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마을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민들은 전통 가옥에 거주하며 1층은 상점으로, 2층은 주거공간으로 활용한다.

옛 주거지가 잘 보존돼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고 있어 전통적 향취와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런 아름다움을 찾아 관광객이 하나둘 몰려들면서 니넨자카는 일본의 미(美)를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가 됐으며 매년 수많은 방문객이 다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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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가와 강변을 따라 이어진 폰토초 거리의 밤풍경. 주점이 많아 밤까지 방문객이 많다.
카모가와 강변을 따라 형성된 기온 거리 역시 문화유산의 온전한 보전이 빛을 발한 장소다. 이곳에는 옛 가부키 극장, 요릿집 등 전통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길옆의 소화전부터 도보를 형성하고 있는 포석(납작하게 세공해 도로를 포장하기 위한 돌)까지 일본 중세시대에 놓인 것들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기온에선 일종의 게이샤 수련생이라고 볼 수 있는 '마이코'를 볼 수 있는데, 이들의 복장과 몸가짐 역시 전통 그대로여서 옛 거리와 함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교토는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며 원형으로서 기능한다. 오래도록 왕실의 보금자리와 수도의 역할을 해 온 일본 전통문화의 발원지이자 지금까지도 일본 문화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손으로 쥐어 만든 생선 초밥, 대나무를 활용한 실내장식, 나뭇잎과 어우러진 일본 음식, 자갈·모래와 조화를 이룬 초목이 만드는 정갈한 조경… 오늘날 일본의 전통문화로 연상되는 대표적인 풍경들의 원천을 찾아보면 그 끝은 결국 교토로 이어진다.

교토가 간직한 전통문화의 출발점은 일본 중세인 13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귀족세력이 득세한 가마쿠라 막부에 반발심을 가진 무사들이 세력을 모아 무로마치 막부를 형성하면서 지금과 같은 전통문화의 형태가 꽃을 피우게 됐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는 기득권인 무사 세력부터 민중까지 선종(복잡한 불교 교리를 도가적으로 간결하게 풀어 중국화한 불교, 종교라기보단 윤리강령에 가깝다)을 따르고 있었기에 계층 간의 교류가 활발했다. 이는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발전을 이끌어 한국·중국과는 다른 일본만의 독자적 문화 형태를 싹 틔웠다.

이 시기에는 일본 최초로 민중이 문화 주류로 부상하기도 했다. 노(일본식 가면 음악극)와 교겐(노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중간에 삽입되는 일상 풍자. 일본식 코미디의 원류), 다도 등 무로마치의 대표적 문화는 다분히 대중 친화적이다.

현재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마을 축제나 본오도리(盆踊) 등의 연중행사와 1일 3식, 된장과 간장을 곁들이는 조리방식 등 일상생활의 습관이나 양식도 모두 이 시기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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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거리 일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마이코의 출근길.
현재의 교토는 이런 무로마치 문화가 시작된 장소이면서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인구 147만명이 살고 있는 일본 내 주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보통 '전통보존'과 '도시발전'은 쉽사리 공존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교토는 대도시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나 고층건물 대신 역사 유물과 어우러진 전통가옥을 잘 보존하는 방식으로 보존과 성장을 동시에 꾀하고 있다. 문화원형이 현재의 삶에 녹아들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전통경관을 그대로 보존해 관리하기 위한 일본정부와 교토부·교토시의 정책이 뒷받침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통을 아끼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1966년 일본 정부는 문화재가 많고 경관보존 필요성이 높은 도시를 대상으로 고도보존법을 제정했다. 교토시는 1970년대부터 '시가지경관조례'를 제정해 미관지구 지정, 역사지구 보존, 옥외광고물 규제 등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전체 시가지의 최고 고도는 31m, 주요 문화재 주변은 15m 이하로 건축 높이가 제한된다.

높이 뿐만이 아니다. 교토시는 전통건조물보존지구, 역사경관보전수경지구, 일대경관정비지구 등을 지정해 건축물의 디자인에도 제한을 뒀다. 마찌야 밀집지역에는 건축물의 모양과 재료, 색채 등을 정할 때도 미리 지자체와 상의하도록 했다. 지구의 특별한 정취와 분위기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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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넨자카의 해질녘 풍경.

보통 철저한 규제는 주민들의 불편과 불만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토의 보존정책 대부분은 정부의 하향식 의사결정이 아닌 주민들의 자발적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주민들은 1970년대부터 지구별로 자치회를 만들어 건축물의 신축과 리모델링을 규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관광지구로서의 차별성을 꾀한 결과물로도 보이지만 교토 주민들 대부분의 마음 속에는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과 전통문화를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교토 시내에서 관광 가이드로 활동 중인 와사베 미야코씨는 "교토 사람들은 중세시대부터 이어져 온 지금의 도시풍경을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강하게 믿고 있다"며 "설령 유적지 주변에 어떠한 호화시설을 지어준다고 해도 주민들은 반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사이지역진흥재단 요시다 타카시 팀장은 "정부가 도쿄타워와 비견될 교토의 랜드마크를 만든다며 지난 1964년 교토타워를 세울 당시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교토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해친다는 게 그 이유였다"며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드나들기에 교토 인근에 공항을 신설하는 방안이 논의될 때도 교토 상공에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교토가 일본 관광을 대표하는 도시가 된 밑거름이 됐지만, 그것은 도시를 사랑하고 전통을 보전하려는 주민들의 마음으로 인해 빚어진 부차적인 결과"라며 "이런 열성적인 분위기가 있으니 정부도 보존을 위한 정책을 아낌없이 시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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