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고택기행·44]초연다구박물관

1932년 건립 추정 일본식 다가구 나가야
개항기 배에는 문화도 함께 실려와
역사의 한편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

신상윤 기자

발행일 2016-11-17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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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고택 초연다구 박물관9
초연다구박물관(인천 중구 신포로 39번길 8-1)은 세로로 긴 직사각형 2층 건물로 현재는 다구(茶具·차를 마시는데 필요한 도구)를 주제로 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건물은 일본인이 지난 1932년 지으면서 건 상량문이 발견됐으며, 해방 이후 적산가옥으로 남아 주택으로 일정 기간 활용됐다. 이 집은 일본식 연립주택인 나가야(長屋) 주택으로, 비슷한 형태의 집 3채가 이어져 있다.

다도 교육 박영혜 관장이 매입 후 2015년 꽃차 박물관으로 문 열어
리모델링 과정 상량문 발견… 서까래·대들보 오래된 집 짐작게 해
2층 높이가 1층보다 높고 한 건물 안에 여러가구 밀집 일본식 민가


인천 고택 초연다구 박물관3
1883년 개항과 함께 일본, 중국 그리고 서양의 문물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인천의 곳곳이 채워졌다.

인천항을 통해 들어 온 배에는 이방인뿐 아니라 그들이 입는 옷과 음식, 문화, 생활습관 등이 함께 실려있었다.

우리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국의 문물이었지만, 인천을 찾은 이방인들에겐 모든 것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향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방인들이 들여온 문물 가운데 주거 문화는 특별한 영향을 끼쳤다. 기존의 주거 문화가 급격히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고유의 주거 양식이 일본과 중국 그리고 서양의 주거 방식과 결합해 정착했다.

인천 개항장 일대에는 외국인 거류지별로 각 국가의 특색이 반영된 주택이 들어섰고, 지금은 그들이 떠난 자리에 그 당시의 숨을 품은 일부 건물들만이 남아있다.

특히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본은 개항 때부터 1945년 해방 직전까지 자국식 건물들을 많이 세웠다.

이후 이들이 떠난 뒤 남은 주택들은 적산가옥(敵産家屋)으로 남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역사의 흔적이 되고 있다.

인천 고택 초연다구 박물관12
초연다구박물관은 현재 차를 끓여 마시는데 필요한 도구를 전시한 박물관과 꽃 차를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물관 1층으로 들어가면 수십 종의 꽃 차들이 병에 담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15일 오후 인천 중구 신포로 39번길 8-1(송학동 3가 5-38) 적산가옥 가운데 하나를 활용해 꽃차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초연다구박물관을 찾았다.

성인 남성 무릎 높이의 시멘트 담장 한가운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그마한 정원을 따라 벽돌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올라 박물관의 문을 열면 울긋불긋 꽃차들이 담긴 병으로 채워진 한쪽 벽면을 마주하게 된다.

초연다구박물관은 인천에서 다도(茶道)를 교육하던 박영혜 관장이 지난 2014년 우연히 이 집 앞을 지나가다 발견해 매입하게 됐고, 내부를 다시 꾸며 지난 2015년 초 문을 연 공간이다.

건물 외벽은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나무로 외벽을 둘러 깔끔하다. 오래된 건물임을 알기 위해선 2층으로 올라가 봐야 한다. 2층 천장을 살펴보면 서까래와 대들보가 이 집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건물은 1932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박 관장은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천장에서 흰 종이에 싸인 오각형 모양의 상량문을 발견했다.

앞면에는 '소화7년10월(昭和七年十月)', 뒷면에는 '봉상동식(奉上棟式)'이라고 적혀 있었다. 집 주인의 이름이 적혀있진 않지만 가주(家主), 신주(神主) 등이 적혀 있는 것을 볼 때 건물이 안전하게 지어지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 상량문을 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 관장은 "오랫동안 집을 관리하지 않아서인지 집 안의 자재들이 대부분 썩거나 거의 쓰지 못 할 정도였다"며 "상량문을 발견하면서 이 집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게 됐고, 집의 오래된 먼지들을 벗겨내고 새로운 자재들로 채워나가면서 집의 모양새를 되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건물은 1층과 2층이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있고, 2층의 높이가 1층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형태를 띠고 있다.

박 관장은 "큰 도로를 향해 난 출입문을 통해 1층이 연결돼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오면 부엌이 있었다"면서 "집 중앙에는 복도가 나 있어 큰 도로를 향해 방 3개가 나란히 나 있고, 미닫이 형태의 문이 있었다"고 리모델링 전의 모습을 설명했다.

또한 "측면으로 난 출입문을 통하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고, 2층에는 화장실과 방이 4개가 있었다"면서 "화장실에 맞닿은 방은 신당처럼 꾸며져 있었다"고 덧붙였다.

인천 고택 초연다구 박물관7
초연다구박물관은 건축 당시엔 3채의 일본식 연립주택이 이어진 나가야(長屋) 주택 형태였지만, 박영혜 관장이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 하면서 중간의 건물을 허물고 정원을 만들었다. 왼쪽 사진은 초연다구박물관의 모습이며, 오른쪽 사진은 초연다구박물관이 나가야 주택으로 건축됐을 때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건물이다.

이 집은 일본식 주거 형태 중 하나인 나가야(長屋) 주택 형태로 지어졌다. 나가야 주택은 한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밀집해 거주하는 일본식 다세대 주택이라 할 수 있다.

나가야 주택인 초연다구박물관은 당초 3채의 집 중 하나였다고 한다. 박 관장은 3채의 집(건물)을 모두 매입할 계획이었지만 마지막 집의 주인을 찾을 수 없어 매입을 포기했다고 한다.

박 관장은 3개의 건물 가운데 2개를 매입하고, 중간에 있던 건물을 모두 헐어 일본식 후정(後庭)으로 조성했다. 박물관 뒤로 난 문을 열고 나가면 일본에서 가지고 온 석탑과 한옥 기와로 둘러싼 정원이 나타난다.

그는 "이 집이 처음엔 들어오기 싫을 정도로 내부가 너무 망가져 있었는데, 조금씩 손을 보고 고쳐나가면서 지금의 이 모습이 됐다"며 "이 건축물이 전통 한옥처럼 정교하게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가꿔 나가면서 집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본에서 건축사를 전공한 재생건축 전문가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는 "나가야 주택은 지금도 일본의 도쿄나 오사카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의 민가 주택"이라며 "개항과 함께 인천을 찾은 사람들의 주거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을 것이고, 넓지 않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지금의 연립주택과 같은 나가야 주택이 개항장 일대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초연다구박물관엔 9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찾았는데, 상량문에 적힌 글귀를 보고 한 목소리로 "소화7년(1932년)에 지어진 집이 이렇게까지 오래 보존되고 있다는 게 놀랍다"고 감탄을 했다.

/글 = 신상윤기자 ssy@kyeongin.com·사진 =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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