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대통령을 위한 다섯개의 메모

신형철

발행일 2016-11-18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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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생각하고 언제나 성찰할 준비로 살았는지
최씨 일가를 만나고 40여년간 되돌아본적 없었는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지 못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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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문학평론가
#1 내가 교수로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배우는 일이다. 정확히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이 직업의 본령은 차라리 배움에 가깝다. 게다가 학생이 하는 질문 중 어떤 것은 내게 와서 오히려 답이 되는 일도 많다. 맹렬하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한 제자가 내게 말했다. 지식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본질적으로는 권력에 대한 욕망처럼 느껴진다고. 아니, 도대체가 무언가를 알려고 덤벼드는 것 자체가 그 대상에 대한 폭력인 것은 아니냐고. 과한 반성이라고 답을 건넸지만, 그 질문의 여운이 내게는 길었고, 그래서 지금은 다시 말해주고 싶다. 너의 그와 같은 근본적인(radical) 고민은 그 고민 자체가 바로 답이라고.

#2 재직 중인 학과에서는 매학기 문인 특강을 여는데 이번에는 이성복 시인을 초대했다. 학생들에게 시인을 소개하면서 내가 아는 이런 내용을 전했다. 시인은 평생 접한 문장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모아 몇 권의 노트를 만들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가 그 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운다는 것. 그래서 운동을 할 때면 그 문장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하고는 한다는 것. 무엇하러 외우기까지 하는가. 어디 가서 폼 나게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 문장들 속에 담겨 있는 질문을 수시로 다시 묻기 위해서, 하여 바닥까지 남김없이 다 물어버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누구나 생각을 한다. 그러나 끝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3 얼마 후 손택수 시인도 특강을 했다. 시인은 대상을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다. 자신은 고등학교 3년 내내 교정의 석류나무를 보았고 어쩌면 그때 시인이 된 것 같다고. 강연 말미에 한 학생이 시인에게 물었다. '요즘에는 무엇을 즐겨 보시나요?'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으나 뜻밖에도 시인의 대답은 심각했다. '학생의 질문은, 당신은 지금 이 사회와 주변 사람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가, 라는 꾸짖음으로 들립니다. 맞아요. 반성할 일입니다.' 말하자면 동문서답이었는데 이 순간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원래 시인이란 작은 것에서 큰 반성을 이끌어내는 이들인 것이다.

#4 학생들과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동화 '행복한 왕자'에 대해 토론한 것은 며칠 후다. 살아서는 궁전 안에서만 지냈으므로 세상만사가 행복했던 왕자가 죽어 동상이 되어 도시 높은 곳에 세워져서는 세상에 숱한 불행이 있음을 뒤늦게 보고 알게 되어 비통해한다. 왕자의 부탁을 받아 왕자의 동상 곳곳에 박혀 있는 보석을 떼어 불행한 이들에게 전달하던 제비는 그만 때를 놓쳐 겨울을 맞아야만 했고 진정한 사랑을 깨달으며 행복하게 죽어간다. 이 동화의 외곽 주제 중 하나는 '변화'다. 존재의 변화는 아름답다는 것.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그토록 어렵다는 것. 왕자와 제비는 둘 다 죽음을 통과하면서 진정으로 변할 수 있었으므로.

#5 '듣기의 철학'(와시다 키요카즈)이라는 책을 보니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어느 직원의 말이 인용돼 있었다. 그에 따르면 '터미널 케어'(말기 간호)의 경우 어떤 병원에서 어떤 의료 행위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환자가 '누구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이었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 있어주는 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케어라는 것. 그러므로 케어란 누군가에게 '시간을 주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재앙의 현장에서도 단지 '옆에 누가 함께 있다'는 그 느낌이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는 말도 거기에 있었다.

이상 다섯 개의 삽화들은 모두 최근의 것이다. 경험과 독서가 자꾸 하나의 주제로 모여드는 때가 있는데 요즘이 그렇다. 근본적으로 고민한다는 것(#1), 끝까지 생각한다는 것(#2), 언제나 반성(성찰)할 준비를 갖추고 산다는 것(#3), 그를 통해 존재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4), 그리고 가장 필요한 곳에 가서 선다는 것(#5). 이 모든 것을 대통령과 더불어 생각한다. 최씨 일가를 만나고 40여 년 동안 그는 근본적으로 돌아본 적이 없었을까, 그래서 한 번도 결정적으로 변해본 적이 없었을까, 그래서 2014년 4월 16일과 그 이후에도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지 못했던 것일까. 그를 생각하며, 그라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날들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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