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동티모르에서 보내 온 사진 한 장

임성훈

발행일 2016-11-28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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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몇년만에 피붙이에 생뚱맞은 메일 '시국 간담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한인들의 심정 고스란히
이역만리 '민초'들의 고국 사랑·걱정 대단함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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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동티모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누님이 한 명 있다. 특유의 도전정신을 잘 아는지라 몇 해 전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로 훌쩍 떠날 때, 가족들도 만류 대신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정기적으로 한 인터넷신문에 싣는 글을 통해 동티모르에서의 근황을 접하곤 하는데, 낯선 곳에서 가치를 찾고 보람을 느끼는 그의 삶에 마음속으로나마 박수를 보내게 된다.

겸연쩍게도 가족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게 됐다. 최근 동티모르에서 벌어진 '작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묵혀버리기 아까워 쑥스러움을 무릅쓰고야 말았다.

그가 동티모르로 떠난 뒤 처음으로 며칠 전 기자에게 이메일을 한 통 보냈다. 이메일의 제목이 참으로 거창(?)하다. '동티모르 한인 시국 간담회'. 한국을 떠난 뒤 피붙이에게 처음으로 보낸 이메일의 제목이 생뚱맞게 시국 간담회라니…. 이어 전화벨이 울리더니 "다른 나라의 한인들에 비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바라보는 동티모르 한인들의 심정을 고국에 알리고 싶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몇 년 동안 전화 통화 한번 없었던 터라 오랜만에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고국을 걱정하는 한인사회의 분위기를 전하는 대목에선 허탈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남녀노소, 보수·진보를 망라해 전 국민을 단결시키더니 가족 간 소통의 장까지 마련해 주니 말이다.

첨부 파일을 열어보니 사진 한 장이 뜬다. 현지 한인들이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흰 종이에 담았다. '꼴등 대통령, 일등 국민!', '퇴진이 희망이다', '챙피해유 내려와유', '세월호 7시간! 진실은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첨부파일은 '동티모르 한인의 고개를 떨구게 하는 고국의 대통령'이란 제목으로 한 간담회 참가자가 썼다는 글이다.

"뉴스를 보니 지도자는 한없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일반 국민은 차원 높은 시위 모습을 보였고, 정의로운 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해 슬기롭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에 동티모르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모였다. 부끄러운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루빨리 자진 사퇴하여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자신을 선택해준 국민에게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길이다."

사실 언론사 특파원이 상주하는 주요 국가에 비해 현지 한인이 100명에 불과한 동티모르에서 열린 시국간담회는 주목받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동티모르에서 보내온 이메일은 기자에게 더없이 소중한 '보도자료'였다. 시간이 꽤 지나 보도타이밍 측면에서 다소 어긋났음에도 불구, 이메일을 소개하는 이유다.

예전에 박 대통령 측근 중 누군가가 박 대통령에 대해 오직 나라만 생각하는 분이라고 했던가. 그들이 이참에 깨달아야 할 게 있다. 국내에 있든, 외국에 있든 민초들이 '그네들'보다 나라를 더 사랑하고 걱정한다는 사실을.

/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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