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고택기행·46]동일방직 의무실

해방이후 건축양식에 ‘노동운동 역사적 현장’ 의미 더해
{동일방직내 건축물 : 1950년대 건립 추정 의무실·교육실로 사용}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6-12-01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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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고택기행 동일방직 의무실 전경
1950년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일방직 의무실은 우리나라 전통양식, 전통양식을 모방한 서양식, 일본식 건축기법이 섞였다.

서정익이 적산공장이던 동양방적 인수 '동일방직' 설립
한옥형태 단층 목조건물 불구 전통·서양·일본식 '복합'

소설 '인간문제' 대동방적 모델이자 女노동운동의 산실
직접연관 없지만 근·현대 노동사 매개체 보존가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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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인천은 대규모 공업지대가 조성되면서 전국에서 일거리를 찾는 인파가 몰린 산업도시였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천의 주요 도시 성격 중 하나다.

인천에 있던 조선기계제작소, 조선이연금속, 조선화약공판 등 일본기업의 대규모 공장들은 일제강점기 말 '군수보급기지'로 활용됐다가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망 이후 미군정청에 귀속됐다.

미군정은 해방과 함께 일본이 남기고 간 이른바 '적산(敵産)공장'의 운영을 한국인 관리인을 내세워 이어갔다. 이승만 정권의 적산기업 민영화 방침으로 이들 관리인이나 기업인이 적산공장을 인수했고, 상당수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인천 고택기행 동일방직 설립자 서정익 동상
동일방직 인천공장에 있는 설립자 서정익 전 사장 동상.

인천 동구 만석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대규모 방적업체인 동양방적 인천공장도 적산공장이 되면서, 1955년 당시 동양방적공사 이사장 서정익(1910∼1973)이 인수해 동일방직을 설립했다. 서정익 전 동일방직 사장은 1932년 나고야공업고등학교 방직과를 졸업한 일본 유학파이자 동양방적 인천공장의 유일한 한국인 기사였다.

서 전 사장의 조부는 개항기 조선인 상권수호활동에 앞장선 상인단체인 '인천신상협회'의 설립을 주도한 서상빈(1859∼1928)이고, 아버지는 1920년대 인천물산객주조합 이사를 지내며 일본인 기업주에게 착취당하는 한국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운동에 적극 참여한 서병훈(1888∼1949)이다.

한때 종업원 수만 1천600여 명에 달했던 동일방직은 최근 인천공장의 사업규모를 대폭 축소하긴 했지만, 인천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토종기업 가운데 하나다.

만석동 동일방직 인천공장 내에는 공장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한옥 형태의 건축물이 있다. 1950년대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 이 건물은 신입사원 교육실과 의무실로 쓰였다가 현재는 비어있는 상태다.

약 258㎡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인 동일방직 의무실은 우리나라 전통양식, 서양식, 일본식이 복합돼있는 독특한 구조다. 지붕선과 기와, 창살문양 등은 한옥양식을 썼지만, 지붕틀과 기둥의 형태·배치, 주출입구 포치(porch), 복도 등 건물 내부구조는 일본건축양식이다.

주출입문은 한옥의 방문과 비슷한 미서기문인데에 반해 현관과 연결된 복도는 전형적인 일본식이다. 건물의 높은 층고는 서양식 건축물을 떠올리게 한다.

인천 고택기행 동일방직 의무실 주출입구
주출입구 포치는 일본식이나, 출입문은 전통양식인 미서기문으로 처리했다.

현재 동일방직에는 의무실의 혼재된 건축양식에 대한 자료나 이를 알고 있는 관계자가 없다. 동일방직 의무실의 건축양식에 대해선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첫째는 일제강점기까지 지배적이던 일본식 건축양식에서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전통양식을 점차 되찾아가는 과도기적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해방 이후에도 일본식으로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일본식 기와를 구하지 못해 한옥 기와로 대체했을 가능성도 있다.

근대건축 전문가인 손장원 인천재능대 교수는 "동일방직 의무실은 해방 이후 변화하는 건축양식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동일방직 의무실 안에는 오래된 인체해부도나 1994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제작한 '국민건강생활지침' 액자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신입사원 교육실로 쓰인 방도 인천공장이 노동자들로 북적였을 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인천 고택 기행 동일방직 의무실 내부
의무실 내부에는 과거 사용했던 인체해부도나 국민건강생활지침 액자, 철제 사물함 등이 그대로 남아 의무실 분위기를 내고 있다.

인천 고택 기행 동일방직 초소
동일방직 내 옛 기숙사 건물 담벼락에는 건축연도가 불분명한 초소형태의 낡은 건축물이 있다. 기숙사에 사는 직원들의 월담 등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동일방직 인천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한 여성 직원은 "1970~1980년대 직원이 많을 때는 수십 명 이상의 신입사원이 의무실 건물에서 수습교육을 받았다"며 "직원이 줄면서 건물을 교육실과 의무실로 쓰지 않게 됐다"고 했다.

동일방직 의무실은 자연환경·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민간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2014년 주최한 '나의 사랑 문화유산 캠페인'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 노동운동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현장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이유다.

동일방직의 전신인 동양방적 인천공장은 소설가 강경애(1906~1944)가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인간문제'에 등장하는 대동방적공장의 모델이다. 식민지 근대 리얼리즘 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인간문제'는 일제강점기 방적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삶과 당시의 노동운동을 생생히 그렸다.

무엇보다도 동일방직 인천공장은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의 산실이다. 동일방직노조는 1972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지부장을 탄생시켰다. 1978년 2월 동일방직노조가 대의원 선출을 위한 투표를 감행하자 사측에 매수된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조합원들에게 분뇨을 끼얹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똥물사건' 이후 단식 농성 등 투쟁을 벌인 노동자 126명을 사측이 해고했고, 전국의 노동계가 동일방직 사건 해결을 위한 집회에 나섰다. 동일방직 해직노동자들이 1978년 만든 희곡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는 노동자 문학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인천 고택 기행 동일방직 의무실 내 교육실
동일방직 신입사원들이 수습교육을 받던 공간. 입사상담도 동일방직 의무실 건물에서 이뤄졌다.

동일방직 의무실은 소설 '인간문제'에 등장하는 일제강점기 동양방적이나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인천 경제사는 물론 근·현대 노동사를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 주장이다.

사유재산이지만, 빈 건물로 남겨두기 보다는 인천의 경제사나 노동사와 관련한 활용방안이 고려돼야 할 필요가 있다.

글 =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사진 =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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