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칼럼]집, 골목 그리고 광장

강은교

발행일 2016-12-06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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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자유 꿈꿀 수 있는 광장
다음 세대의 출렁임과
일어섬이 들어있는 불빛
거기엔 무수한 꿈의 불이 켜질 것
오로라 같은 빛이 집 가는길을,
집의 자유로 가는 길 밝혀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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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
나는 골목을 좋아한다. 골목에는 참 많은 것이 들어있다. 비록 싸구려라 할지라도 내 안의 걸음이 골골이 새겨져 있는 구두, 혹은 운동화의 흙먼지들이 들어있으며 골목 밖에 대한 설렘이 들어있으며, 큰 길에의 희망이 들어있다.

저녁에 그리로 돌아와 보자. 설사 막다른 골목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 날의 종착역에 도착한 안도감으로 당신 집의, 또는 당신 방의 문을 열게 할 것이다. 아뜩하게 높은 아파트의 23층 혹은 43층이 당신의 집이라 할지라도 아파트가 서있는 가파른 골목으로 들어설 때면 안전한 곳에 당도했다는 안도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골목은 당신의 집이며 당신의 방이다. 거기 당도하면 당신은 얼른 벗어버릴 것이다. 낮에 입었던, 낯선 이들의 눈길이 무수히 묻어있는 딱딱한 옷들을. 당신의 맨살이 마음대로 숨쉴 수 있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맨발로 걸어다닐 것이다. 헐렁한 슬리퍼를 신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머리칼을 흐뜨릴 것이다.

그뿐일까. 모든 골목은 큰 길에의 희망을 품고 있다. 모든 골목은 큰 길로 이어진다. 그리로 가는 중에는 차들이 엉켜있기 쉬운 회전로터리를 빠져나가야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버스 정류장을 먼지를 뒤집어쓰며 지나가야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오늘은 또 누가 내 팔에 매달려 지하로 지하로 내려갈 것인가'하는 생각에 골똘히 잠겨 가끔씩 푸르르 떨기까지 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지하철 역도 있을 것이지만.

그러다 아마 지하철 입구는 광장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당신의 골목보다 더 많은 골목이 광장엔 모여들고 있을 것이다. 광장은 수많은 골목이 한데 모여 만드는 땅의 바다 같은 곳이다. 그러기에 광장엔 모든 삶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는 계단도 있을 것이다. 아까 집을 나오는 골목을 걸으면서 만났던, 키큰 시다나무가 늦가을 또는 초겨울 황금빛으로 물든 잎을 맨 몸에 달고 가상이에 묵묵히 서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 밑에 앉을 것이다. 거기 앉아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오늘 광장은 그런 의미에서 꿈인지도 모른다. 집을 꿈꾸는, 모든 자유로운 방을 꿈꾸는, 아무렇게나 질질 끌어도 괜찮은 슬리퍼를 신거나, 유행이 한참 지난 신발이나 옛날 검정고무신을 신장 한구석에서 끌어내 뒤꿈치를 꺾어 신어도 아무도 웃지 않을 자유를 주는 집의 꿈일 것이다.

마다가스카르 정글에는 연록빛 녹빛의 날개를 속에 감추고 있는 극락조가 있다고 한다.

짝짓기 철이 오면 수컷은 암컷을 유인하기 위하여 날개 펼치기를 한다. 물론 덤불을 편편하게 정리한 작은 집을 마련하고, 정성스레 소제까지 한다. 그런데 그 장소는 키큰 정글의 나무 사이로 빛이 비쳐들어오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그래야 극락조는 날개를 몸속 깊은 곳에서 꺼내 마치 빛나는 오로라처럼 넓게 펼쳐 출렁이며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글의 곳곳에서 비슷한 광경이 벌어진다. 그래서 정글은 오로라같이 녹색으로 빛나는 날개들로 밤을 밝힌다. 그러면 그 불에 끌려 암컷들은 서서히 노래부르며 다가온다. 집이 깨끗한지, 바닥이 가지런한지, 어떤 날개가 가장 빛나는지 살피며 멈칫멈칫. 그러면 그날의 빛 정글엔 다음 세대가 출렁이며 일어서는 것이다.

광장으로 가라, 골목의 자유를 꿈꿀 수 있는, 다음 세대가 일어서는 광장으로 가라. 가장 가까운 것에 가장 큰 것이 눕는다. 집의 그리운 불을 켜라. 그건 아마 가장 작은 촛불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다음 세대의 출렁임과 일어섬이 들어있는 불빛일 것이다.

우리들의 광장, 무수한 골목이 강물처럼 모여들어 이루어진 아름다운 광장, 거기에는 무수한 꿈의 불이 켜질 것이다. 오로라같은 빛이 집으로 가는 길을, 집의 자유로 가는 길을 밝힐 것이다.

오늘 당신이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는 환한 광장의 불빛이 당신의 집 문을 비추고 있다. 당신은 문을 연다. 돌아옴을 위하여 매일 우리로 하여금 골목을 떠나게 하는 꿈의 침대가 누워있는 광장을 연다. 맨살, 맨발의 자유를 위하여, 허식이 없는 자유를 위하여, 가장 따뜻한 꿈을 위하여. '썩은 끈 잘라버리고/그대 자유로운, 오, 영혼이여'하고 외치는 휘트먼의 시구처럼 자유의 커튼이 펄럭이는 당신 집 속의 광장을.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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