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아름다운 강산' 에서 '줄탁동시(啐啄同時)'를 엿보다

임성훈

발행일 2017-01-02 제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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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 금지곡 명단 올라
원곡의 가치 재현 창법 광화문 광장에선 사뭇 달라
알껍질 깨려는 부리소리 '격렬한 저항 몸짓'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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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누군가 지난해 가장 인상 깊었던 노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아름다운 강산'을 꼽을 것 같다. 정확히는 정유년을 코앞에 둔 2016년의 마지막 날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진 노래다.

이 노래는 '금지곡 시대'(?)로 일컬을 수 있는 70, 80년대, 당시 권력의 빗나간 문화의식을 엿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최근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당시 수백 곡의 가요 및 팝송이 국가안전 수호와 공공질서에 반하고, 사회질서를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민간 문화영역에 권력의 자의적 잣대를 들이댄 것 자체가 민주사회에서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일이지만, 더욱 실소를 자아내는 것은 금지곡 판정 사유다.

가령,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는 '행복의 나라로 간다면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라는 이유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왜 이루어질 수 없나'란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송창식의 '왜불러'는 '경찰의 장발 단속에 저항하고 정부 정책에 반발할 우려가 있다'며,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는 '현역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며 금지곡 낙인이 찍혔다.

개인적으로, 압권은 배호의 '0시의 이별'이다. 통금이 있던 시절, 0시에 이별하면 통행금지 위반이라나?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1974년에 만든 '아름다운 강산' 또한 당시 금지곡 명단에 올랐던 곡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금지곡 판정 사유는 앞의 곡들과 조금 다르다.

신중현의 아들이자 유명 기타리스트인 신대철이 최근 밝힌 일화에 따르면, 이 노래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신중현이 '각하'의 노래를 만들라는 권력의 강권을 거부하고 만든 곡이다.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없지만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있다'는, 지금 돌이켜 보면 록의 저항 정신으로 탄생한 노래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비록 영상으로 접하긴 했지만, 광화문 광장에서의 '아름다운 강산'은 사뭇 달랐다. 우선 오리지널리티에 충실하면서도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신대철의 편곡과 전인권의 원시적인 창법은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원곡의 가치를 재현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보수단체들이 맞불집회에서 이 노래를 부른 것과 관련해, '아름다운 강산은 이렇게 부르는 거야'라며 한 수 가르치는 대가들의 모습이 엿보였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강산'은 블랙리스트로 물의를 빚고 있는 빗나간 문화권력을 향해 항의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70, 80년대의 금지곡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좀 거칠게 표현해, 블랙리스트는 금지곡 시대의 천박한 유물이다.

그래서인지 대금에 태평소, 장구, 꽹과리 등 우리의 소리와 록밴드가 발산하는 일렉트릭 사운드의 조화는 마치 알 껍질을 깨기 위해 어미닭과 병아리가 부리를 마주하는 '줄탁동시'를 연상케 했다. 결코 물려받지 말아야 할 유물을 쉼 없이 쪼아대는 격렬한 저항의 몸짓을 읽을 수 있었다.

'줄탁동시'의 의미가 남다른 닭의 해이다. 정유년에는 이 말 본래의 가치가 보다 다양한 영역에 접목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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