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종자 주권은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는 미래산업이다

심재호

발행일 2017-01-12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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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해외법인 개발 종자 막대한 법인세 과세 '황당'
국익위해 '토종형 원종 개발' 정부지원 절대적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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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호 경제부장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종묘업계에 닥쳤던 잔혹사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서울종묘, 흥농종묘, 중앙종묘 등등… 국내 종묘산업을 이끌던 토종 간판 업체가 몬산토, 신젠타, 다끼이, 누넴 등의 외국 자본에 넘어간 '종자 주권'의 상실 시대를 맞이하게 했던 하나의 굴욕사로 기록된다. 우리 미래 먹거리 산업이 거대 외국자본에 이처럼 속절없이 무너진 당시 국민적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우리의 먹거리를 외국계 회사에 맡기게 된 잘못된 운명 탓이다. 아쉽게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국내 종묘업계는 당시 충격을 아직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 후유증 탓일까? 국가 경제의 빠른 발전상과는 달리 유독 이 업계만큼은 영세성의 그늘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종자 개발부터 상용화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을 요구하는 종묘업계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작용은 이처럼 더딘 걸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열강의 종자 주권 경쟁에서 가뜩이나 뒤처진 국내 종묘업계에 최근 믿기 어려운 황당 사건이 벌어졌다. 국세청이 최근 N종묘사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벌여 이 업체의 지난 2015년 기준 1개 분기 매출분의 막대한 법인세를 과세한 것이다. 국내 해외 법인에서 개발된 종자를 채종·보급한 일을 두고, 도매유통업으로 규정해 내린 세무당국의 결정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다른 시각에서 보여지는 인식차에 불과하다. 현 조세특례제한법상 농업회사법인의 경우 법인세를 면제 또는 감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먹거리를 책임지는 업계의 중요성을 법 취지에 살려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종자산업을 보호 육성하려는 의도를 잘 살린 대목이다. 그럼에도 단순 인식차에 불과한 결정이었다면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우리의 국내 종자산업의 발목을 스스로 잡은 엄청난 자살골 행위나 다름없다.

해당 업체는 이 과세에 불복해 이의 신청을 한 상태다. 하지만 증권가에서 이 업체 주가의 폭락세가 이어지고, 외국계 지분률이 절반 이상 꺾여 나가는 등의 혹독한 대가를 치른 뒤였다. 이 같은 황당 사건은 종묘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상황을 순식간 살얼음판으로 내몰았다. 비좁은 땅덩어리에서 종묘 개발 기술마저 미천한 국내 농업계 현실도 아랑곳 않는 냉혹한 현실이 야속할 따름이다. 같은 처지의 업체들은 이를 두고 정부의 정부에 의한 '종묘 말살책'으로 비유하고 있다. 탈루 등에 따른 정당한 과세나 세금 추징에 이의가 있을 리 없지만 이러한 애매한 경우는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미 한송이, 딸기 낱알에 조차 외국에 비싼 로열티를 치르는 현실에 비춰, 여지없는 칼을 빼 든 정부 당국의 처사가 과연 옳은 일인지 판단이 좀처럼 서지 않는 이유다.

지금 세계 각국은 자국 보호 차원의 치열한 세금 인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기업의 국내 회유를 위해 35%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15%까지 인하할 태세다. 각국도 세금인하의 '당근책'을 제시하며 기업유치 또는 자국으로의 회유에 공을 들이고 있다. 비교 기준과 시점이 다소 다를 수 있으나 갈길 바쁜 우리의 종자 산업은 오히려 정부에 의해 발목이 잡힌 형국이니 안타깝다. 외환위기 당시 현 상황을 연상시키는 비싼 수업료는 괜히 낸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미래 먹거리의 자멸을 부르는 화(禍)를 자초해선 안된다. 미래 국가 식량 확보의 핵심이 곧 종자 주권에 있듯, 국익의 큰 틀에서 정부의 융통성이 진정 발휘되길 기대해본다. 지금 종묘업계에는 세금 추징이 아니라, 토종형 원종 개발을 위한 정부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심재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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