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대통령의 유머

이영재

발행일 2017-01-17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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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모든 것 솔선수범한 오바마처럼
우리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불안하기만 한 국민마음 녹여주고
어루만져 줄 지도자 보고 싶은 것
이제는 국민들도 웃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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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최근 감동의 고별사로 우리를 부럽게 했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영화광(狂)이면서 TV 드라마도 무척 좋아한다. 그가 재밌다고 추천한 드라마는 '오바마 드라마'로 묶여 방송사 홍보에도 쓰이고, 실제 큰 인기를 끌었다. '웨스트 윙'이나 '하우스 오브 카드' '뉴스 룸' '홈 랜드' '와이어'는 그가 끔찍이 좋아했던 드라마였다. 영화 스타워즈 광팬이라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지난해 백악관에서의 마지막 송년 기자회견. 마지막이라 그런지 기자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그러자 오바마는 "전 이만 스타워즈를 보러 가야 합니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끝맺었다. 그가 스타워즈 팬인 것을 알고 있던 기자들은 아무말 못하고 그를 보내 주었다. 나중에 스타워즈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하는 기자도, 국민도 없었다. 유머였으니까.

문화탓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인들은 유머 감각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보고 있다. 지난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국 abc뉴스와 여론조사업체 SSRS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자질로 유머감각이 중요하다는 응답자는 74%에 달했다. 유머감각이 중요하지 않다는 응답자는 고작 7% 뿐이었다. 대통령의 유머를 얘기 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사례가 배우 출신 도널드 레이건이다. 레이건이 1981년 존 헝클리에게 총을 맞았을 때다. 레이건은 걱정하는 아내 낸시에게 이런 유머를 날렸다. "여보! (배우처럼) 총알 피하는 것을 깜빡했어". 병원에 가서는 수술 의사들에게 "여러분이 공화당 지지자였으면 좋겠는데…"라고 조크를 던졌다. 이를 들은 의사는 "지금만은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라고 답했다.

당시에 우리가 받아 주지 못해서 그렇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도적이지 않은 말실수로 웃겼다. "공정한 인사를 해서 부패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를 "공정한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말하거나 루마니아 독재자의 이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잊어버려 회의석상에서 그냥 '차씨'라고 불렀던 김 전 대통령은 그럼에도, 자신의 말실수를 미안해 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재치있게 자신의 실수를 유머로 승화시켰다. 그는 "이래야 분위기가 덜 딱딱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어느 지방선거때였는데 정치적 라이벌 DJ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자 승부욕이 강했던 그는 다음날 무작정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막상 할 말이 없던 그는 기자들에게 "여러분 그거 아세요? DJ는 나한테 늘 담배를 얻어 피우던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의 일화를 묶은 'YS는 못말려'는 출간 한달만에 무려 35만부가 팔렸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의 합류로 돌이킬수 없는 대선정국에 들어섰다. 그런데 대권 잠룡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같이 차갑고 무섭다. 전쟁터에 나선 장수들 같다.출사표 곳곳에는 '패배는 곧 죽음'처럼 사생결단을 예고하는 문구들로 가득찼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목숨을 걸고 정권을 바꾸겠다"고 선언했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조국을 위해 몸을 불사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다크호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반기문 대선 출마? 친일독재부패세력의 꼭두각시, 국민심판 받을 것"이라고 험한 말을 쏟아냈다. 당찬 결기를 보이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거친 말이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크게 마음 상한 국민들에게 순간적으로 기분을 전환시켜줄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런게 아니다.

웃기기만 잘한다고 훌륭한 대통령이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모든 것을 솔선수범하는 지도자. 오바마는 그런 대통령이었고, 8년동안 천편일률적으로 변하지 않는 오바마에 깊은 신뢰를 보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저 불안하기만 한 국민의 마음을 녹여주고, 다독거리며 어루만져 줄수 있는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우리는 보고싶은 것이다. 그 무기가 '유머'일수도 있고 '정책'일수 있고 '인간성'일수 도 있다. '8년 동안 승진을 못해 섭섭했다'는 오바마의 유머와 그 유머를 지독히 사랑했던 미국인들이 고별연설을 들으면서 '4년 더!' '4년 더!' 외쳤던 의미를 우리 대선 후보들이 진정으로 배웠으면 한다. 이제 우리도 웃고 싶으니까.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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