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헬조선'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충환

발행일 2017-01-18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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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경험 없는 청년실업자수 지난해 '역대 최다'
과일·쌀·집값 세계 상위권 '먹고살기 힘든 나라'
'청년들의 절망' 기성세대로서 그저 미안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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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헬조선'이나 '지옥불반도'라는 단어를 대할 때마다 두 가지 의문을 가졌다. 첫째는 정말 '지옥(hell)'이라고 말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이냐는 것이다. 청년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희망과 절망을 한 걸음씩 내디디며 난폭한 강을 건너는 세대다. 불확실성은 늘 길동무처럼 옆구리에 바짝 붙어있고, 현실은 모순과 부조리와 불합리의 징검다리다. 힘들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고통스럽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정상적이다. 50대 중반 우리 세대는 더했다.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자본주의를 '해체'하며, 파쇼를 '타도'해야 하는 시대의 무거운 짐까지 지고 있지 않았던가. 지난(至難)했던 그때의 현실을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알기나 하는 걸까. 목숨까지도 내놓고 싸웠는데.

또 하나는 왜 하필이면 '조선(朝鮮)'이니 '반도(半島)'니 하는 표현을 쓸까 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처럼 신분이 고착화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한반도 남과 북의 청년들이 저마다 처해있는 고단한 현실을 싸잡는 자조적 표현임도 알겠다. 그런데 '북조선'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 '조선'이라는 단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반도'도 마찬가지다. 복잡하고 다중적인 의미다. 그렇다면 북쪽이야말로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되지 못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일까? 그런 곳을 닮아가고 있어 더 어이없고 절망스럽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요 며칠 사이, 나의 생각이 안일했음을 확인시키는 기사들을 잇달아 접한다. 그중 하나는 청년실업률과 관련된 것이다. 종종 접해왔던 청년실업률이 아니라 아예 한 번도 취업을 해보지 못한 청년들과 관련한 통계다. 지난해 취업 경험이 전혀 없는 청년실업자 수가 통계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 비율이 19.3%로 역대 최대치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1% 안팎이었는데 2015년에 19%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2년 연속 19%대를 보이고 있다. 이 나라 청년들이 취업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일자리 절대부족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는 얘기다. 양질의 일자리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또 다른 기사는 119개국 6천여 개 도시의 생활비와 주거비 통계에 관한 것이다.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한국의 바나나 가격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비싸다. 사과, 오렌지, 토마토 가격은 세계 4위, 쌀과 감자 가격은 5위다. 양파, 우유, 치즈, 쇠고기 가격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 도시 중심가 아파트 매매가는 세계 9위다. 우리보다 비싼 곳은 홍콩, 싱가포르, 스위스, 영국, 일본 등 8개 국 밖에 없다. 인터넷 월간 이용액과 맥도날드 식사 가격만이 하위권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먹고 살기 힘든 나라다.

이 나라 청년들의 이런 현실을 기성세대들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직전의 경제부총리라는 사람은 국정감사에서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의를 받자 "들어본 적 없다"고 답한다. 전 여당대표는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배워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한다"고 준엄하게 꼬집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 중 한 분은 "헬조선을 떠나 이민가고 싶다는 나라들도 천국이 아니다"라며 청년들을 함부로 위로한다. 이쯤 되면 그동안 품어왔던 '헬조선'과 '지옥불반도'에 대한 두 가지 의문은 나의 안일함을 넘어 무지의 소치다. 경멸해 마지않던 '꼰대'의 시각이다. 거만한 기득권의 호사다. '헬조선'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청년들의 절망에 지금부터라도 내 가슴 한 편 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에는 터무니없이 소소한 몸짓이겠지만.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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