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최순실과 그들이 찾아 준 수표 3장

정진오

발행일 2017-01-23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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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조윤선 나란히 구속 법조인 생리 떠올라
대학때 산 법률서적 뒤적이다 10만원권 수표 발견
기한 지나 못 쓴다면 누구에게 조력 구하나 걱정


정진오 사진(새 데칼용)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이제는 많은 국민이 변호인의 조력 없이도 검찰 수사나 법원의 재판에 임할 수 있게 된 듯싶다. 정말이지 법률 선진국의 문턱까지 왔다는 느낌이 확 든다. 이게 다 '선생님'으로 불렸다는 최순실과 그들의 덕분이다. 보통 사람들은 으레 검찰의 소환 통보만 받아도 다리가 후들거리게 마련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최순실과 그들의 사건 응대는 너무나 많은 법률정보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앞으로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검·경의 수사나 법원의 재판이 호락호락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몸이 피곤하거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 수사에 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미 알게 되었고, 헌재가 부르는데도 나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팁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나는 모른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이면 웬만한 조사는 통과 가능한 '전가의 보도'처럼 쓸 수 있다는 점도 각인시켰다. 앞으로는 '최순실은 되고 나는 왜 안 되느냐'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수사 대상자들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검·경만 골치 아프게 생겼다. '최 선생님과 그들의 법률 강의'가 생각보다 더 오래간다면 변호사들마저 그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

20여 년 전 법조 출입 초창기에 '미란다 원칙'이라는 다소 낯선 법률 지식을 알게 되었다. 법원 관계자에게서 보기 드문 판결이 나왔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취재했던 바다. 경찰관이 범죄용의자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그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진술 거부권 등을 고지했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경우였다. 경찰 영화에 많이 나오는 그게 바로 미란다 원칙이란 거였다. 수사 과정에 흠결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판결이다. 명색이 법조 출입기자가 기본적인 것도 몰라서야 되겠냐는 생각에 법률 상식을 다룬 책부터 샀다. 요새 부쩍 그렇게 법률 지식에 다가갔던 기억이 새롭다.

유명 법조인 출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장관이 나란히 구속되는 것을 보고서는 그동안 가까이서 보아 온 일부 법조인의 생리 하나가 떠올랐다. 검사든 판사든 변호인이든 일부 법조인 중에는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유난히 짙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발부하면서 '범죄사실이 소명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법 위반 문제가 이처럼 소명, 즉 입증의 문제로 나아가면 더욱 그렇다. 나의 범죄를 너희가 입증하지 못하면 나는 무죄란 인식이 굳어 있다. 김 전 실장이 특히 그 경우에 속한다고 느껴진다.

최순실도 김 전 실장도 특검 조사에 불응했던 지난 토요일에는 집안에 있는 몇 안 되는 법률 관련 서적을 빼놓고 이리저리 훑어보게 되었다. 잊고 있던 묵비권 얘기까지 나오니 그동안에는 보이지도 않던 법률 서적이 눈에 들어온 터였다. 대학 때 교양과목 이수를 위해 샀던 '법학개론'을 뒤적이다가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맨 뒷장에서 난데없는 10만 원짜리 수표 3장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발행일이 20년이 다 된 것이었다. 그 수표는 어떻게 해서 그 책 속에 들어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꼭꼭 숨어 있던 것일까. 정말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최순실과 그들이 아니었으면 그 수표는 영영 눈에 띄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최순실과 그들에게 감사인사라도 전해야 하나. 혹시 은행 측이 기한이 오래전에 지난 수표여서 쓸 수 없다고 나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그때는 누구에게 조력을 구하나.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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