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정경유착 망령의 부활

재벌개혁,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보다 훨씬 어려워
섣부른 공약 스스로 옥죄는 어리석음 되풀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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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백사장 그 사람 참 꾸준하고 고마운 사람이야. 한번 들어오라고 해."

며칠 후 백사장 내외는 경무대의 오찬에 초대되었다. 그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백사장 그동안 도와주어 고마워. 내가 돈이 있으면 갚겠으나 나에게 먹고살라고 준 것이 아니고 나랏일 하라고 준 것이니 고맙게 받겠어. 백사장도 국리민복을 위해 일하면 도와주겠어." 백씨는 이 말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의 아버지인 백낙승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상(巨商)의 후예 백낙승은 일제의 전시(戰時)경제정책에 편승해 막대한 부를 챙겼다. 또한 그는 1945년 11월부터 1948년 8월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 생활비 조로 매달 50만원과 정치자금을 상납했다. 얼마나 갖다 바쳤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요즘 가치로 대략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달러라면 그렇게도 벌벌 떨던 이 대통령이 일본 기계를 들여와 태창방직을 확장하도록 허가해준 것은 이 인연 때문이었다." 이승만의 개인비서였던 윤석오의 회고이다. 또한 백낙승은 국내 최대의 방적공장인 고려방직 영등포공장을 귀속재산 명목으로 헐값에 불하받았으며 백낙승 소유의 대한문화선전사는 국가독점사업이었던 홍삼전매권까지 넘겨받았다. 태창그룹이 국내 최초의 재벌로 부상했던 배경이다.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시발점이다.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권력과 돈과의 밀월 관계는 확대재생산 되었다. 해방 이후에 일관된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이 배태 기반이었다. 정부가 장기간에 걸쳐 자원을 시장원리보다는 낙숫물 효과를 기준한 인위적 배분방식을 고수해 도덕적 해이 시비가 불거질 여지가 컸다. 제2, 제3의 백낙승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장기간의 군부 독재정권 하에서는 '준조세'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일해재단이 대표적 사례이다. 1984~1987년 4년동안 전두환 정부는 30대 재벌과 주인 없는(?) 공기업들로부터 거의 강제로 589억5천만원을 거두어들였다. 현재 가치로 무려 2천억원에 해당한다. 이때부터 '보험료'라는 말도 회자 되었다. 1985년에는 재계 7위의 국제그룹이 공중분해 되었는데 보험료(?)를 적게 납부해 권부(權府)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정치자금 강요문화를 청산하겠다며 대통령선거에 출마했겠는가. 해바라기 오너 경영인들의 자진 납세(?)는 목불인견이었다. 2002년 '차떼기' 대선은 세계인들을 경악시킬 정도였다.

최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정경유착 망령이 되살아났는데 그 중심에 삼성이 있다. 연루된 다수의 기업 중에서 삼성만 유일하게 최순실씨 일가에 수백억원을 건넨 것이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와 횡령,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삼성은 국정농단의 객체가 아닌 주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팔을 비틀어 준조세를 낸 것이라며 억울하단다. 지난 1월 18일 법원은 "구속사유가 불분명하다"며 특검의 항고를 기각했다. 뇌물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제공한 뇌물의 대가성이 있어야 하는데 증거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삼성의 80년 역사상 총수가 최초로 옥살이할 수도 있어 국내외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벚꽃대선'설이 무성하다. 엄동설한임에도 물밑의 움직임들이 분주해 보인다. 곳곳에서 자천, 타천의 출사표까지 확인되고 있다. 재벌들의 정경유착문제가 이번 대선의 핫이슈가 될 개연성이 크다. 세계 1위의 자살률과 최하위의 출산율, 점차 커지는 부패지수 등과 재벌자본주의 간에 상관관계가 높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문제는 선진국 공통의 화두이나 한국이 더 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선거연령 18세 인하에 대한 야 4당의 합의까지 무르익어 '헬조선' 개혁 목소리는 더욱 커질 예정이다. 그러나 재벌개혁 작업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보다 훨씬 어렵다. 역대 정부의 '외양간 고치기'식 빚잔치가 반면교사이다. 섣부른 공약들이 스스로를 옥죄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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